"킬러 문항 하나에 150만원 호가" 교사들 '사교육 유착' 판친 이유 있었다

입력
2023.08.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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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입시학원 문항당 출제료 살펴보니]
수학은 2019년부터 고난도 문항 별도 책정
영어 등 문항당 7만원인데 수학은 50만 원도
학원 "영어 절대평가 뒤 수학 등 단가 뛰어"
'봉투 모의고사' 전문 업체도 상승 부채질

300명에 가까운 현직 교사들이 최근 5년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모의고사 문항 판매 등 사교육 관련 영리 활동을 한 적이 있다고 실토한 가운데, 해당 기간 학원가에서 교사들에게 지급하는 고난도 문항 출제료가 크게 뛴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유명 입시학원은 '킬러(초고난도) 문항' 하나에 일반 문항의 7배가 넘는 50만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강생에게만 모의고사를 제공하는 입시학원이나 모의고사 전문 판매업체는 킬러 문항당 100만~150만 원을 제시하며 교사들을 유인하고 있다는 게 사교육업계의 전언이다.

24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교사들이 유명 입시학원 또는 '일타 강사'와 계약해 받는 수능 모의고사 문항 출제료는 최근 4, 5년 사이에 눈에 띄게 올랐다.

한 대형 입시학원의 '모의고사 문항당 출제료'를 확인한 결과, 수학은 2019년부터 고난도 문항 값이 별도로 매겨져 특별 취급을 받았다. 2019~2020년 수학 가·나형별 고난도 3개 문항 가운데 2개 문항은 각 25만 원, 더 어려운 1개 문항은 50만 원의 출제료가 책정됐다. 문·이과 통합수능이 처음 치러진 2022학년도 대입(2021년 시행)부터 이 학원은 수학 공통과목과 3개 선택과목의 고난도 문항 단가를 25만 원으로 정했다. 정답률이 현저히 낮아 킬러 문항으로 통하는 수학 공통과목 '22번'은 50만 원이 책정됐다. 이 무렵 영어 등 다른 과목의 문항당 가격이 7만 원 선이니 7배 이상 비싸다.

영어 절대평가·불국어 수능 거치며 문제 값 인플레

학원가는 대체로 2018학년도 수능의 영어 절대평가 도입을 출제료 급등의 기점으로 꼽는다. 영어 변별력이 약화하면서 수학 등 다른 주요 과목에서 킬러 또는 준킬러 문항이 등장했고, 이런 '풍선효과'가 해당 과목 교사들의 몸값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교육부가 21일 공개한 교사들의 자진신고 사례에서도 수학 교사들이 입시업체 모의고사 문항 출제 참여로 5년간 2억9,000만~4억8,000만 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이유로 국어 문항 출제료도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게 학원가 얘기다. 역대 최고의 '불국어'로 꼽혔던 2019학년도 수능을 계기로 비문학 문제 값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대형 입시업체 A사 관계자는 △특정 학원은 국어 5개, 수학 3개 고난도 문항 출제료로 전체 모의교사 출제 비용의 절반 가까이를 쓰고 있으며 △킬러 문항 출제료가 건당 100만~150만 원까지 올랐다고 전하며 "정통 입시학원들도 가격 인상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출제료 인플레'를 주도하는 업체로 학원가는 킬러 문항 중심의 문제 모음집을 제공하는 일부 유명 입시학원을 지목한다. 출제 경험이 풍부한 교사라면 이 학원에 문항을 제공하고 시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는다고 한다. 교육부도 특정 학원 수강생만 풀 수 있는 '폐쇄형 모의고사' 문제를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받고 제공한 일부 교사를 특히 문제 삼으며 감사원과 함께 감사를 계획하고 있다. 고난도 문항을 집중 제작해 영역별로 판매하는 '봉투 모의고사' 판매업체들도 출제료 상승을 부채질하는 세력으로 꼽힌다.

이런 사정으로 교사들 입김도 자연스레 세지고 있다. 수십 년 업력의 유명 입시학원마저 교사들이 다른 업체와 출제료를 비교하며 집단으로 문항 제공을 거부해 수모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당국이 문항 출제 가격 규제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않은 탓에 학원들이 과당 경쟁 속에 출제료 인상 압박을 느낀다는 불평까지 나오는 판이다. 한 입시학원 대표는 "돈이 많이 들어간 모의고사가 입소문을 타면서 사교육업계 전반이 흔들리고, 교사들도 이런 분위기에 같이 올라탄 것"이라며 "킬러 문항이나 교사 출제 배제 조치로 접근하기보단 근본적으로 대입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손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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