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불참하기로 하면서 지역 내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아세안을 주요 협력 파트너로 띄워 왔던 미국이 정작 ‘역내 가장 큰 잔치’엔 ‘2인자’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보내기로 한 탓이다. ‘아세안을 경시하는 것 아니냐’라는 불만도 나온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백악관은 내달 5~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세안 정상회의에 바이든 대통령 대신 해리스 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전날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같은 달 9, 10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로 향한다.
아세안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은 국제 무대에서 아세안의 ‘몸값’이 높아졌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될 텐데, 불발되면서 김이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올해 의장국인 인도네시아는 바이든 대통령 참석을 위해 일부러 날짜까지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고위급 외교 관계자는 로이터에 “아세안 정상회의는 통상 11월 열리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자카르타에 들렀다가 바로 인도로 이동할 수 있게 하려고 9월로 앞당겼다”고 귀띔했다.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냈던 인도네시아로선 체면을 구긴 꼴이다. 자카르타포스트는 “미국 지도자가 자신이 아닌 부관(해리스)을 보내기로 한 것은 실망스럽다”며 “우리는 왜 그가 오지 않기로 결정했는지 이유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사실 미국 대통령의 아세안 정상회의 불참이 특별히 문제 될 일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4년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중국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아닌 2인자 리창 총리가 대리 참석한다. 그러나 아세안이 미국에 노골적 실망감을 표현하는 건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후 아세안에 적극적으로 구애 손길을 내밀어 왔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탓에 화상으로 열렸던 2021년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아세안은 역내 안보와 번영에 있어 탄성을 유지하는 핵심 축”이라고 강조했다. 1억200만 달러 규모 지원도 약속했다. 지난해엔 5년간 공석이었던 아세안 주재 미국대사를 임명하고, 미국-아세안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외교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아세안을 ‘홀대한’ 모양새가 됐다. 머레이 히버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동남아시아 담당 상임연구원은 “바이든 대통령 불참으로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는 미국이 아세안에 관심이 없으면서 중국 때문에 마지못해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미국 정부는 그간 인도·태평양 전략 중심에 아세안이 있다고 강조했지만, 이번 선택으로 이런 수사에도 의문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론 미국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역내 영향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헌터 마스턴 호주국립대 동남아시아 연구원은 “미국이 동남아시아 파트너들과 신뢰를 쌓으려 2보 전진했지만 1보 후퇴한 꼴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