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넷플릭스에 한국인, 한국인" 할리우드에서 무슨 일이

입력
2023.08.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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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창작자와 글로벌 OTT 한국계 직원들이 만드는 미국 콘텐츠... 현지서 'K합작' 새 흐름
"글로벌 OTT 한국계 직원 느는 분위기" '무급' '내부추천' 위주 채용서 상전벽해
한인교회 등 'K경험 전파 기지' 미국 제작사 등장도

한국계 미국인인 이성진 감독 겸 작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넷플릭스 본사와 드라마 '성난 사람들'(4월 공개)을 만들 때 특별한 경험을 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참석차 최근 한국을 찾은 그는 "(드라마 제작을 논의한) 미국 넷플릭스 드라마 팀장도, 그 밑에 직원분도 모두 한국인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드라마지만 한국계 창작자가 기획해 한국 정서가 녹아든 콘텐츠 제작 지원을 위해 넷플릭스 본사에서 실무진을 한국계 직원으로 꾸린 것으로 보인다. 한국계 창작자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한국계 직원들과 매칭돼 한국도 아닌 미국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할리우드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내년 1월 열릴 제75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13개 후보에 오른 '성난 사람들'엔 아시아계 미국 이민자들의 특수한 환경과 정서가 곳곳에 담겨 있다. 일거리를 얻기 위해 한인교회를 찾은 대니(스티븐 연)는 찬송가를 듣다 눈물을 흘린다. 이 감독은 투자를 받기 위해 만든 드라마 소개 피칭(Pitching) 자료에 그가 다니던 한인교회에서 찍은 사진도 넣었다. 이 감독은 "넷플릭스 피칭 때 만난 임원들이 아시아계여서 이 작품을 설명하는 게 정말 수월했다"면서 "백인 임원들에게 피칭했다면 한인교회를 설명할 때 '이게 무슨 얘기야?'라고 했을 것"이라고 농담했다.


"정규 채용 꺼렸는데" 美 기업 한국계 주목 이유

한국계 창작자와 글로벌 OTT의 한국계 직원들이 만나 미국 콘텐츠를 함께 만드는 이른바 K합작이 미국에서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이뤄졌을까. ①'오징어게임'(2021)을 계기로 K콘텐츠의 영향력이 부쩍 커지면서 ②미국 콘텐츠 시장에서 한국계 창작자를 적극 발굴해 ③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례가 늘고 ④그 과정에서 플랫폼 혹은 스튜디오와 창작자 사이 다리를 놔줄 한국계 인력의 수요가 커진 데 따른 연쇄 효과가 그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 내 콘텐츠 기획 및 제작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글로벌 OTT의 한국계 직원 고용은 3, 4년 전과 비교해 늘었다. 글로벌 OTT 관계자는 "요즘엔 한국에 있는 일부 창작자와 제작사도 국내 오피스 대신 바로 미국 본사로 가 미국 오리지널 콘텐츠로의 투자 미팅을 진행하기도 한다"며 "현지에서 한국계 창작자들과 원활한 소통과 한국 관련 콘텐츠에 대한 이해 등을 위해 한국계 직원의 필요성이 예전보다 커졌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의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계 직원 비율은 2020년 23.9%에서 2022년 27%로 증가했다. 라틴계(11.3%)와 흑인(10.7%)보다 두 배 이상 비중이 크다. 같은 기간, 아시아계 고위직 비율도 14%에서 18.4%로 높아졌다. 문화 다양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제작사로 유명한 미국 스카이댄스미디어의 준 오 글로벌 비즈니스 및 해외 부문 총괄 대표는 BCWW에서 본보와 만나 "20여 년 전 미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입문했을 때만 해도 한국계는 내부 추천이나 업계 입소문을 통해서만 대부분 채용돼 무급으로 일하거나 월급을 받더라도 시장 평균보다 낮게 받았다"며 "이젠 모든 미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카메라 앞(작품을 통해서)뿐만이 아니라 한국계 채용 등을 통해 사내 다양성을 장려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OTT 훌루와 미국 드라마 '아메리칸 서울'을 기획 중인 이동훈 엔터미디어 콘텐츠 대표는 "미국 스튜디오들이 한국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을 직접 고용하거나 별도로 컨설팅 계약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애플TV플러스는 지난해 봄 미국 영화의 전당인 아카데미뮤지엄에서 연 드라마 '파친코' 글로벌 시사회에서 현지 관객들에게 무궁화가 그려진 티켓 봉투에 씨앗을 담아 나눠줬다. '파친코' 제작에 참여한 관계자는 "'추'란 성을 지닌 한국계나 아시아계로 추정되는 여성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더라"라고 귀띔했다.




윤여정 박찬욱 정이삭 이성진 'K전파기지'

요즘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제작사 A24는 한국계 창작자들과 작품 계약에 팔을 걷고 나섰다. A24는 이 감독의 '성난 사람들'을 제작했고, 윤여정에게 국내 첫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2021)를 배급했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하는 미국 드라마 '동조자'(2024년·HBO맥스 공개)도 이곳에서 만든다.

미국 콘텐츠 시장에서의 이런 변화에 대해 이 감독은 "한국의 집단적 경험 자체에 관심이 많다"고 답했다. A24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기획해 배우 양자경에게 지난 3월 미국에서 열린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아시아계 최초로 여우주연상 트로피도 안겼다. 이 감독은 "아시아적 콘텐츠를 이 회사가 워낙 많이 만들어 A24의 'A'가 아시안(Asian)의 약자냐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발 K합작의 발전 가능성이 희망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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