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부담 ‘구원 투수’에서 ‘애물단지’로 변한 50년 만기 주담대

입력
2023.08.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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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농협은행 취급 중단
수협 24일부터 연령 제한
인기는 지속... 12일 만 1조↑

"아예 중단하면 모를까 연령 제한을 하면 괜히 역차별 얘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고…"

금융당국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연령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에, 한 시중은행 관계자가 늘어놓은 넋두리다. 지난달까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네 달 연속 증가하고 증가폭까지 확대되자, 당국은 50년 주담대를 가계부채 증가 주범으로 콕 집으며 중점 점검을 예고했다.

은행권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대출자들의 월 상환 부담을 줄여주자는 '선한 취지'가 곡해됐다는 억울함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주담대 이용자들은 평균 11~15년이면 대출금을 다 갚는다"며 "빚 부담 완화 외 다른 목적은 없었다"고 호소했다. '50년 주담대 때리기'가 가계부채의 근본 해결책은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역차별을 우려했던 앞선 관계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집을 사야겠다'는 심리부터 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부동산시장이 안 좋으면 주담대 100년짜리가 나와도 대출받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와중에 일부 은행들은 50년 주담대 취급을 중단하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BNK경남은행과 NH농협은행은 각각 27일, 31일을 마지막으로 50년 주담대를 판매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은 당국과 상관없는 은행 자체 결정임을 강조한다. NH농협은행은 "당초 2조 원 한도로 출시됐고 이달 말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중단이 아닌 한도소진"이라고 밝혔다. BNK경남은행은 "연령 제한 검토를 위해 차주 연령별 대출 용도를 파악할 예정"이라며 "구체적 기준이 나오면 재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제적으로 연령 제한을 두는 은행도 늘고 있다. 1월 은행권 최초로 50년 주담대를 출시했던 SH수협은행은 이튿날(24일)부터 만 34세 이하 고객에게만 50년 주담대를 판매한다. "주택금융공사 보금자리론의 대출 기준을 준용했다"는 설명이다. DGB대구은행도 9월 중 연령 제한 도입 여부를 결정한다.

4대 시중은행은 당국 가이드라인을 기다리겠다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대부분 출시한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 갓 일주일 된 곳도 있어, 당국의 마른 기침에 섣불리 철회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 관계자는 "최근 은행장 모임에서 연령 제한과 상한에 관한 얘기가 오간 것으로 들었다. 조만간 얘기가 나오지 않겠나"라고 전했다. 그는 "그동안 정책 방향이 자주 바뀐 게 사실"이라며 "시장에 혼란을 주지 않는 범위 내의 대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은행은 속이 타들어가지만, 금융소비자들 사이에서 50년 주담대 인기는 폭발적이다. 중단될 수 있다는 소식에 "서둘러 막차 타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 잔액은 10일 1조2,380억 원에서 22일 2조4,800억 원으로 12일 만에 두 배 불었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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