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위 부동산 업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달러채권 이자 지급불능,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마이너스 전환, 국유 부동산 업체 위안양(시노오션) 이자 지불유예, 국가통계국 청년실업률 발표 중단, 중룽국제신탁 만기 상품 상환 차질, 3위 부동산 업체 헝다(에버그란데) 파산보호신청, 위안화 가치 16년 만에 최저 추락, 인민은행 대출우대금리 인하, 상업용 부동산 개발사 소호차이나 세금 미납...'
최근 숨 가쁘게 쏟아진 중국 경제의 악재들이다. 당장 '중국판 리먼 사태'를 피하기 어렵다는 우려, '40년 호황'이 끝났다는 주장,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초장기 침체에 접어들 것이란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인 중국 경제가 흔들리면 적잖은 파장이 일 것이란 불안감이 팽배하다. 그러나 중국 위기설은 서방 매체들의 단골 메뉴기도 하다. 10여 년 전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도 부동산 거품을 지적하며 경착륙을 예측했다. 2년 전 헝다 사태 당시에도 지금처럼 연쇄 도미노 붕괴를 걱정하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예상이 모두 맞은 건 아니다. 폐쇄 국가에선 기본적 정보를 얻는 게 쉽지 않아 정확한 진단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감정은 최대한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부터 정확히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위험에 제대로 대비하고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먼저 위기설을 촉발시킨 비구이위안 채무 불이행(디폴트)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가장 큰 부동산 기업이 300억 원도 안 되는 이자를 갚지 못할 정도라면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비구이위안 주가가 떨어지자 JP모건이 250억 원어치나 주식을 사들여 지분을 늘린 사실에 주목한 이는 많지 않다. 적어도 JP모건은 비구이위안이 망하진 않을 것으로 본 셈이다. 이처럼 엇갈리는 신호를 이해하기 위해선 중국 부동산 시장의 특수성과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원칙적으로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인 중국에서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한 건 1990년대 후반부터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도입으로 토지사용권(30~50년)이 거래되기 시작하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수억 명의 농민공이 살 도시의 집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 공급과 일자리 창출은 물론 금융, 철강, 시멘트, 건자재 등 연관 산업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부동산 부양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건설사와 시행사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지방정부에서 토지사용권을 산 뒤 집을 지어 큰 이익을 남겼다. 지방정부도 이를 통해 부족한 재정을 확보했다.
그러나 집값이 10년 만에 10배 이상 오르는 등 부동산 거품이 생겼다. 벼락부자가 늘면서 수출 제조 업체까지 부동산에 뛰어들었다. 당시엔 대출 규제도 없었다. 자고 나면 오르는 집값에 2010년대 중반 베이징의 방 3개짜리 아파트는 20억 원도 뚫었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각해지면서 중국 정부는 2016년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주택은 거주하기 위한 것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라며 규제를 시작했다. 업체의 부채와 현금성 자산 등을 따져 대출을 중단하거나 증가폭을 제한한 것이다.
이후 자금줄이 막힌 건설사의 공사가 중단되며 이번엔 돈을 냈는데도 입주를 못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시위가 이어지고 민심이 흉흉하자 정부는 다시 건설사들에 분양 주택은 무조건 완공해 공급할 것을 지시했다.
사실 유동성은 부족하고 원자재 가격은 급등하는 상황에서 아파트를 준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비구이위안이 공급한 아파트는 지난해 70만 채로 가장 많았다. 사실상 손해를 감수해 가면서 정부 정책을 솔선수범해 따르다 위기에 처한 셈이다. 길게 보면 정부가 의도적으로 부동산 공급 과잉과 거품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란 점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 정부가 3만 개도 없는 협력업체와 7만 명의 직원을 둔 모범 기업 비구이위안을 무너지게 놔둬 리스크가 확산되는 걸 방치할 확률은 거의 없다"며 "은행 대출 한도만 조금 올려줘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고 강조했다. 전 소장은 금융기관들이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고 있다는 점도 상기할 것을 주문했다.
오히려 비구이위안 사태는 중국 정부가 본격적인 내수 진작에 나설 명분과 계기를 제공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이미 지난달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는 7년간 고수해 온 ‘주택은 투기 대상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삭제해 다시 규제에서 완화로의 정책 변화를 암시했다.
여기엔 부동산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적 고민이 담겨 있다. 부동산 부문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4%(부동산 건설·서비스 12%+관련 산업 12%)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더구나 돈은 부동산을 중심으로 돈다. 부동산 경기를 죽인 채 소비를 일으킨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또 다른 성장의 축인 수출에 기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중국의 7월 수출액은 2,817억 달러(약 370조 원)로 전년 동기 대비 14.5%나 감소, 3년 5개월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미국과의 충돌 등을 감안하면 당분간 수출이 회복될 가능성은 적은 만큼 내수 진작밖에 없다. 부동산 거품을 더 키워선 안 되지만 규제를 다소 풀어 부동산 시장에 온기가 돌게 하고 이러한 심리가 소비로 이어지게 하는 연착륙이 중국 정부의 숙제이자 딜레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21일 사실상 기준금리인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연 3.45%로 0.1%포인트 인하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시장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유동성 공급에 나선 셈이다.
지방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방관할 수 없다는 점도 정부가 결국 위기 확산을 막을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1선 대도시의 아파트 가격은 여전히 높지만 지방의 2, 3선 소도시들은 하락폭이 크고 악성 미분양 물량도 많다. 빈집만 1억2,000만 채가 넘는다는 분석도 없잖다. 지방 부동산이 무너지면 지방정부의 수입은 감소하고 지방정부융자기구(LGFV·지방정부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해 인프라나 건설 사업을 지원하는 금융기구)의 부채 리스크는 커진다. 지방정부의 전제 재정 수입 중 토지사용권 매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나 된다.
공식적으로 지방정부 부채는 37조 위안(약 6,800조 원)이지만 국제통화기금은 66조 위안(약 1경1,200조 원), 골드만삭스는 숨겨진 부채까지 포함하면 23조 달러(약 3경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 당국이 21일 지방정부 부채 상환 차원에서 1조5,000억 위안(약 275조 원)의 특별융자채권발행을 허용한 건 이런 지방정부 빚을 사실상 중앙정부가 관리하겠다는 구조 신호다.
최악의 경우 일부 부동산 업체와 신탁회사가 쓰러진다 해도 연쇄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중국 경제가 붕괴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문제가 된 비구이위안과 위안양, 완다 등 3개사의 부동산 시장 점유율을 모두 합해도 6%가 안 된다. 비구이위안의 차입금 총액 1,625억 위안은 중국 전체 은행 자산의 0.05%에 불과하다. 위기가 부동산 전체 실물 시장이나 금융 시스템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한국은행 판단이다. 중룽신탁 문제도 부동산 분야 투자 규모는 전체 운영 자금의 10%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룽신탁은 상환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공시까지 냈다.
물론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통한 성장 모델이 한계에 달한 건 분명하다. 도시화도 이미 성숙 단계이다. 늘기만 하던 인구가 줄어든 것도 심상찮다. 더 이상 '인구보너스'는 없다. 외아들과 외동딸인 ‘소황제’ 젊은 층은 집을 살 필요도 못 느낀다. 부모에게 물려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유’가 아닌 ‘자유’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정부가 부동산 부양책을 쓰려 해도 수요를 일으키긴 어렵다는 얘기다. 공급은 정부가 조절할 수 있지만 사람 마음까지 움직일 순 없다. 소비 살리기가 여의치 않다는 얘기다.
현재 중국 은행에 예치된 자금은 28조 위안에 달한다. 2020년 15조 위안에서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동안 중국은 다른 나라들과 정반대로 2019년 4.3%였던 금리를 꾸준히 인하했는데도 돈은 금고로 더 몰렸다. 중국인들조차 정부를 믿지 못하고 미래를 불안해한다는 방증이다.
경제가 정치의 희생양인 것도 족쇄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을 위해 제로 코로나 정책을 지나치게 밀어붙인 나머지 경제가 골병이 든 것이란 푸념이 적잖다. 장기 집권의 명분을 세우는 과정에서 미국과 갈등은 더 커졌고 수출은 곤두박질쳤다. 시 주석의 ‘공동부유’ 이데올로기도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면서 해외로의 자본 유출만 부추겼다는 불만이 나온다.
시대는 변했고 과거처럼 수출과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성장 모델을 더 이상 고수할 순 없다는 건 중국도 잘 안다.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으로 대표선수를 교체하는 게 급하지만 골든타임은 지나가고 있고 성공도 장담할 수 없다.
청년실업률 발표를 중단할 정도로 일자리 상황도 심각하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는 사상 최대인 1,150만 명의 대학 졸업생이 취업 시장에 가세한다. 성장률이 떨어져 일자리가 줄면 적잖은 사회 불안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시 주석은 3연임 첫해부터 경제를 살려 일자리를 늘리고 산업 구조조정도 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안유화 어바인대 교수는 "중국 정부가 이미 내수 진작과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추며 유동성을 푼 상황에도 비구이위안 사태가 터졌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중국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 수요 부문에서 큰 흐름이 바뀐 만큼 예전처럼 박리다매를 고수해 온 업체들이 무너지는 부동산 시장의 구조조정은 시간문제"라며 "중국 경제가 어려워질 경우 맨 처음 줄이는 게 수입이란 점에서 대중 수출 비중이 큰 한국도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