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공원의 37세 암컷 침팬지 ‘알렉스’는 사람을 향해 침을 뱉는 버릇이 있었다. 그를 향해 침 뱉는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알렉스의 기이한 행동은 결국 사람에게 배운 것이었다. 느닷없이 침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불쾌함을 막기 위해 알렉스의 우리 앞에는 강화 유리가 설치됐다. 알렉스가 뱉는 침은 더 이상 사람에게 닿지 못했다.
알렉스는 강화 유리 너머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의기소침해 보이는 알렉스를 위해 사람들은 수컷 침팬지 ‘루디’를 데려왔다. 루디는 과거 용인 에버랜드에 있었다. 블록을 쌓는 등의 재주로 한때 인기스타였으나 점차 이상행동을 하고 다른 개체들과 갈등을 벌이다 대구로 보내졌다. 그들은 사람들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해 짝이 된 2014년부터 줄곧 대구 달성공원의 우리 안에서 지냈다. 그리고 지난 8월 11일 오전, 우리를 청소하기 위해 뒷문을 열고 들어온 사육사를 밀치고 두 침팬지는 동반 탈출한다. 알렉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육사의 유도에 따라 우리 안으로 돌아왔으나 루디는 달성공원 일대를 더 배회하다 2시간여 만에 마취총을 맞고 기도가 폐쇄돼 죽었다.
내가 근무하는 상주에서도 멀지 않은 경북 고령군의 한 농장에는 20세 암컷 사자 ‘사순이’가 있었다. 2008년경 어느 개인에 의해 사육되기 시작했다는 사순이는 줄곧 농장에 설치된 14㎡ 철제 우리 안에서 지내왔다. 지난 8월 14일 아침, 우리를 빠져나와 근처 풀숲의 그늘 아래 약 20분간 몸을 누이고 있던 사순이는 별다른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나 엽사에 의해 사살됐다.
여기까지가 이달 들어 연속으로 발생한 동물 탈출 사건에 대해 언론 등이 전하는 사건의 전말이다. 사건 당사자는 탈출한 동물들이겠으나, 죽은 동물도 살아남은 동물도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그들의 진술은 사건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데 반영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사람 곁에 있었던 시간 동안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의 진술과 몇 가지 행정 서류들을 종합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목요연하게 작성된 듯 보이는 사건의 전말이 과연 진정한 사건의 처음과 끝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관점에서 사람 위주로 작성된 사람의 스토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대공원에서 울타리를 부수고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서울 도심지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동물원의 부실한 동물 관리 실태부터 본질적으로 전시 동물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의 목소리가 크게 일어날 법했다. 그런데 여론에 미묘한 반전이 일어난 것은 동물원 측에서 밝힌 세로의 스토리가 알려지면서다. 동물원 측은 세로의 방황이 부모 얼룩말을 잃은 충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하며 외로운 세로에게 새 여자친구를 소개해 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잘 쓰인 한 편의 얼룩말 스토리에 사람들은 마음을 놓았다.
한 생명체를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동족들과 떼어 내어 열악한 환경 속에 가두어 전시해도 되느냐는 문제는 사춘기 소년 동물 세로의 귀여운 일탈로 치환됐다. 과연 여자친구라고 불리는 새로운 암컷 얼룩말을 함께 사육 전시함으로써 해피엔딩이 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대신 “세로야 이제 행복하렴”이란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눌렀다.
알렉스, 루디, 사순이, 세로. 이들은 모두 사람이 붙여준 이름이다. 동물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들의 생애를 인간의 스토리 속에 녹여 이해하려는 것은 동물을 사랑하려는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 안전하게 갇혀 전시되어 있는 조건으로만 유효한 것이라면, 그것을 온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를 벗어나는 순간 루디도 사순이도 아닌, 제거해야 할 한 마리의 맹수가 되어 버린다. 이런 반전의 서사를 외면한 채 아이의 손을 잡고 여전히 우리 안에 있는 알렉스와 세로를 보러 가도 좋을지 묻게 되는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