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스 티메르만스 유럽연합(EU) 수석 부집행위원장이 돌연 자리에서 물러났다. 오는 11월 네덜란드 조기 총선 출마를 위해서다. 티메르만스 부집행위원장은 2019년 출범한 현 EU 집행부에서 최우선 정책 과제인 기후 정책을 총괄해 온 인사다. '기후 황제'라고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임을 두고 'EU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 추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2일(현지시간) 티메르만스 부집행위원장이 사임계를 제출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수년간 EU 집행위원회와 유럽 시민들을 위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데 대해 감사하다"며 그의 사직서를 즉시 수리했다.
티메르만스 부집행위원장은 2014년 네덜란드 외무장관에서 물러난 뒤 EU로 자리를 옮겨 최근까지 10년가량 일해 왔다. 특히 2050년 기후중립 달성과 지속 가능한 산업환경 구축을 목표로 내건 EU의 청사진 '그린 딜(Green Deal)' 계획을 이끌어 왔다. 이 같은 티메르만스 부집행위원장의 업무는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부집행위원이 직무대행을 겸임하며 임시로 맡게 된다고 EU는 전했다.
티메르만스 부집행위원장의 중도하차는 네덜란드 차기 총리 후보자들 중 한 명이 된 데 따른 것이다. 그는 3개월 후 치러지는 조기 총선을 앞두고 합당한 노동당·녹색좌파 연합당의 초대 대표로 선출됐는데, 네덜란드에선 총선 결과 하원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다. 네덜란드 최장수 총리인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현 총리가 지난달 연립정부 붕괴 직후 정계 은퇴까지 선언한 상황이라, 티메르만스 부집행위원장의 총리직 도전 성공을 점치는 이도 적지 않다. 실제 그는 지난달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나는 총리가 되고 싶다. 지난 몇 년간과는 다른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향후 EU 기후 정책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티메르만스 부집행위원장은 '2050년 탄소중립' 등 핵심 의제를 이끌어 온 EU 기후 정책의 구심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EU법상 내년 상반기에 도출돼야 하는 2040년 탄소감축 목표 설정이 타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크다. 미국 언론 폴리티코는 "내년 6월 EU 선거를 앞두고 친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데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어서 (기후 대응과 관련한) 야심 찬 목표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짚었다. 유럽 언론들도 "EU는 가장 중요한 '기후 정치인'을 잃었다"(독일 한델스블라트)는 등의 표현으로 티메르만스 부집행위원장의 사임 소식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