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좀비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푸르죽죽한 피부에 흉측하고 너덜너덜한 사지가 삐걱삐걱 살아 움직이는 것만 봐도 섬뜩한데, 산 자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달려드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늘 배고파 보이는데 어쩜 그렇게 힘도 센지!
좀비물의 유행이 전 지구적으로 계속되면서 좀비 캐릭터도 변화와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무섭기만 하던 좀비가 아주 우습게 희화화되기도 하고, 남다른 감성과 개성을 뽐내는 좀비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좀비를 친근한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이야기도 눈에 띈다. 이윤창 작가의 만화 '좀비딸'은 좀비가 된 딸을 지키려는 아빠의 고군분투를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그려내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그러고 보면 좀비도 좀비가 되기 전까지는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는데 자꾸만 그걸 잊곤 한다.
또 다른 좀비 만화 한 편을 소개한다. 박소림 작가의 출판 만화 ‘좀비 마더’는 제목 그대로 좀비가 된 엄마의 이야기다. 주인공 '해진 엄마'는 어느 날 문득 "창백하고 거친 피부,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을 거울로 보며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른 좀비에게 물려서가 아니라 어느샌가 죽었는데 죽은 채로 살고 있었던 것.
그녀는 충격을 받거나 슬퍼할 새도 없이 우는 아이를 달래고 기저귀와 분유를 주문한다. 누가 봐도 수상한 외모지만 파리가 꼬이기 전에 쓰레기를 내놔야 하고 아이 산책도 시켜야 하니 삐걱거리는 몸으로 외출을 감행한다. 아기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외출할 수 있는 곳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와 마트뿐. 거기서 한 명씩 알게 되는 다른 양육자들도 어딘가 심상치 않은데... 각자 말 못 할 사정과 아픔을 가진 채 삐걱거리고, 사라지고, 부서지는, 그러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좀비가 되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첫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한창 좀비처럼 지낼 때, 산후우울증으로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거대한 고독 속에서 삶을 끝내야 했던 그녀들을 꼭 껴안아주고 싶은 마음에 '좀비 마더'를 그리게 되었다고. 죽음은 ‘세상에 오직 나 홀로 있는 것 같을 때’ 말을 걸어온다. 그 무섭고 외로운 순간, 이렇게 힘든 게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걸 알면, 세상 어딘가에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 이 시간도 반드시 지나간다는 걸 믿으면,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힘들지만 살 수 있다.
작품 속 좀비들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지는 못한다. 인간에게 배척당하고, 죽어서도 대출과 양육의 무게에 여전히 짓눌린다. 하지만 좀비들끼리 서로 손을 내밀고 맞잡으면서, 삐그덕 삐그덕 함께 살아간다. 과거에 좀비 마더였거나 지금 좀비 마더로 힘겹게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 서로 손을 잡자고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