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절벽에 뜬 '큰 달'... 풍요의 섬 절경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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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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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고슴도치섬, 부안 위도 한 바퀴

‘위도에 뜬 큰 달, 천연기념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이 지난 11일 낸 보도자료 제목이다. 밤하늘의 달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다고? ‘큰 달’은 다름 아닌 달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 전북 부안군 위도면 진리 해안가의 퇴적층이다. 위도는 부안에서 가장 큰 섬이다. 6개의 유인도와 24개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고 1,100여 명이 살고 있다. 격포항에서 위도 파장금항까지는 하루 4회(목요일은 3회) 카페리가 왕복한다. 뱃길로 16km, 50분가량 걸린다.


조기 파시로 풍요로움 누리던 고슴도치섬

늦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17일, 파장금카페리호가 격포항을 출항하자 갈매기가 떼를 지어 따라붙는다. 배와 속도를 맞춰 비행하며 손끝에 잡고 있는 새우과자를 부리로 낚아채는 솜씨가 하루 이틀 연마한 실력이 아니다. 한바탕 과자 파티를 끝낸 무리는 항구로 되돌아가지 않고 여객선 지붕에 내려앉았다. 섬 여행의 낭만을 더해 주는 동반자다.

우측 바다 수평선에는 고군산군도의 여러 섬이 줄지어 아른거리고, 좌측으로는 위도에 딸린 무인도가 하나둘 스쳐간다. 약 1시간이 걸려 파장금항에 내리자 고슴도치 조형물이 반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한다’는 속담이 있다. 아주 못난 동물이라는 가정하에 생긴 비유일 텐데, 위도의 어미와 새끼 고슴도치 조형물은 귀엽기 그지없다. 섬에는 이곳 말고도 곳곳에 고슴도치 형상의 틀이 ‘포토존’으로 세워져 있다. 생김새가 고슴도치와 닮아 위도(蝟島)라 부른다.




한때 위도는 풍요로움의 대명사였다. 위치로 보면 ‘물 반, 고기 반’이라 할 정도로 어족 자원이 풍부한 ‘칠산어장’의 중심이다. 전남 영광군에서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까지 이르는 넓은 해역이다. 흔히 ‘영광굴비’로 불리는 조기도 이 바다에서 주로 잡힌다. 섬에는 논밭이 거의 없는 데도 많을 때는 4,000여 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섬 주민인 최만 부안문화관광해설사는 “조기 파시(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시장)가 열리는 철이면 상인과 외지인 5,000여 명이 추가로 들어와 섬이 들썩거렸다”고 전했다. 파시는 사라졌지만 강태공에게 위도는 지금도 이름난 낚시터다. 섬 주변 투명한 바닷물에 낚싯대를 드리우면 도미 우럭 농어 광어 등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

황금어장에 세곡선이 지나는 길목이니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였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의 해군 무관에 해당하는 수군첨절제사가 머물며 사법과 행정을 총괄했다. 면 소재지인 진리마을 한가운데에 관아 건물이 남아 있다. 숙종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설치한 수군 진영의 동헌이다.

위도에 뜬 큰 달, 대월습곡

위도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섬이다. 파장금항에서 서남쪽 끝 대리마을까지 가장 빠른 길로 약 8km에 불과하지만, 구불구불 해안을 따라 이모저모 살펴보자면 여정이 무한정 길어진다. 걸어서 다 돌아보기는 쉽지 않아 여행객이나 낚시꾼은 대개 배에 차를 싣고 온다. 길쭉하게 생긴 섬 양쪽으로 해안도로가 조성돼 있는다.

진리마을에서 한 굽이를 돌면 위도해수욕장이다. 양쪽으로 낮은 산등성이가 길쭉하게 뻗어 깊숙한 만이 형성돼 있고, 그 안쪽에 제법 넓은 모래사장이 형성돼 있다. 해변에서 한참을 걸어 나가도 잔잔한 물살은 허리춤을 넘지 않는다. 외딴섬에서 한적하게 휴가를 즐기기 딱 좋은 장소다.




해수욕장 옆 공원은 위도상사화 군락지다. 육지에서 자라는 상사화와 다른 위도에만 자생하는 종으로 40~60㎝ 곧추선 꽃대에서 상아빛 화사한 꽃이 피어난다. 상사화는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붙여진 애틋한 이름이다. 위도상사화도 이른 봄에 싹을 틔운 잎이 모두 진 후 8월 말경 꽃을 피운다. 반그늘의 산기슭과 바닷가 언덕에 무리 지어 자라는데, 이달 26일부터 섬 일대에서 ‘위도상사화축제’가 예정돼 있다.

대월습곡은 위도해수욕장에서 약 1km 숲길을 걸어가야 볼 수 있다. 해수욕장 좌측에서 숲으로 들어가면 오솔길을 따라 나뭇가지에 ‘대월습곡 지오트레일’이라는 리본이 매달려 있다. 언덕을 따라 평탄한 탐방로에는 상록활엽수가 그늘을 드리우고 덩굴식물이 뒤덮여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간간이 맞은편 산등성이와 푸른 바다가 어른거리다,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다.


거칠고 넓은 암반 위로 이름처럼 커다란 달덩이 모양의 특이한 지층이 벽을 이루고 있다.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큰 규모다. 절벽의 높이는 30m에 이르고 길이는 100m에 가깝다. 어떤 것은 1개 층이 어른 키를 훌쩍 넘는다. 새까만 것부터 검붉고 누런 것까지 색깔을 달리하는 수십 개 지층이 포개지고 휘어져 있다. 타원형을 이룬 지층의 형상에서 보름달을 연상해 대월습곡이다. 두꺼운 책을 두루마리처럼 접은 것처럼도 보인다. 절벽 아래 바다는 유난히 맑고 투명하다. 에메랄드빛 바다에 두둥실 떠오른 달이다.

습곡은 지층이 물결 모양으로 주름지는 현상이다. 주로 퇴적암층 지각에 횡압력이 작용해 형성된다. 대월습곡은 주름과 굴곡이 거의 수평으로 누워 포개진 횡와습곡이다. 완전히 굳어지지 않은 지층이 양탄자처럼 말려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국내 대형 습곡이 대부분 백악기 이전에 형성된 데 비해 대월습곡은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거대한 반원형 지층을 섬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큰 달’이라 불러 왔다. 대월습곡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10월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예정이다.

위도에는 이곳 말고도 지질 명소가 여럿 있다. 파장금항 고슴도치 조형물 바로 옆 바닷가에는 화산 분화의 생생한 증거인 주상절리가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수십 개의 연필 기둥을 세워 놓은 듯 모양이 선명하다. 벌금리에서 방파제로 연결된 작은 바위섬 '딴오자미' 퇴적층은 층층의 줄무늬가 선명하다. 행정 지명을 따 벌금리층이라 부른다. 위도에서는 가마우지를 ‘오자미’라 불렀다. 딴오자미는 벌금리에서 떨어진 가마우지 섬이라는 뜻이다.

심청전·홍길동전 전설 따라 해안도로 한 바퀴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하면 섬의 속살과 바깥 바다 풍광이 정겹게 펼쳐진다. 도로변 몇몇 군데에 전망대 겸 쉼터가 조성돼 있다. 그중에서 돛단배 형상의 조형물이 설치된 상왕등도 전망대가 눈에 띈다. 언덕배기 아래 펼쳐지는 드넓은 바다 끝에 조그마한 섬 두 개가 희미하게 보인다. 위도에 딸린 유인도 상왕등도와 하왕등도다. 육지에서 온 만큼 더 가야 하는 섬으로 여객선이 주 2회 운항한다.

상왕등도는 구한말 유학자 간재 전우가 3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이때 지명이 너무 높다 해 왕등도의 임금 왕(王)을 왕성할 왕(旺)으로 바꿨다고 한다. 간재는 순종 2년(1908)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도학(道學)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하겠다 결심하고 왕등도·고군산군도 등 작은 섬을 옮겨 다니며 학문에 전념한 인물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깊은금, 미영금, 논금 등의 작은 해수욕장이 잇달아 나타난다. ‘금’은 위도해수욕장처럼 바다가 내륙으로 깊숙이 파고든 만 지형을 일컫는다. 섬에서는 이런 물굽이를 ‘구미’라 불렀는데 나중에 한자로 표기하며 ‘금’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만 해설사는 위도에는 14구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리마을부터는 반대편 바다로 접어든다. 해안도로 우측으로 바다 멀리 부안에서 고창으로 이어지는 변산반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언덕배기 전망대에 ‘칠산어장’ 안내판과 함께 ‘심청전 전설’ 비석이 세워져 있다.

부안군은 위도에 딸린 섬 임수도 앞바다가 소설에서 효녀 심청이 뛰어내린 인당수라 주장한다. 아주 먼 옛날부터 섬에는 거센 풍랑을 잠재우기 위한 수장 풍습이 있었고, 고려시대부터 중국 상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이상 세계 ‘율도국’의 모델이라는 주장도 있다. 오래전부터 신분의 고하에 따른 차별과 탐관오리의 횡포가 없었고, 자연환경이 빼어난 섬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다른 건 증명할 길이 없어도 풍광이 깨끗하고 수려하다는 점만은 수긍할 수 있다.




파장금과 진리마을 사이 바닷가에 ‘서해훼리호참사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1993년 10월 10일 110톤급 여객선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로 숨진 292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탑이다. 사고의 원인은 정원 초과와 과적, 한마디로 ‘설마’가 빚은 인재였다. ‘파도를 헤치고 들려오는 슬픔과 절망의 통곡 소리’를 새긴 추도사는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다짐’하고 있다. 그 다짐이 부족했을까. 되풀이된 대형 참사는 많은 국민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30년 전 섬의 아픔을 위로하듯 위령탑 주위에 위도상사화 몇 송이가 처연하게 피어 있다.

위도(부안)=글·사진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