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이름을 바꾸고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흡수 통합하기로 하면서 삼성·SK·LG·현대차 등 주요 그룹 계열사들이 함께 복귀 채비를 하고 있다. 한경연까지 탈퇴한 포스코도 재가입을 준비 중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전경련에서 이름을 뺀 뒤 6년 만이다.
다만 전경련의 혁신안 실천 의지에 물음표가 찍히고 정경유착의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재계는 조심스런 분위기다. 삼성 관계사 중 삼성증권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한경협에 합류하지 않기로 했다. 가입할 뜻을 내비친 다른 기업들도 한경협 합류는 절차적 움직임일 뿐 실질적 활동까지 연결하기는 이르다는 입장을 보였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이날 임시총회를 열고 한경연의 조직과 인력, 자산, 회원 등을 승계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전경련은 탈퇴했지만 한경연의 회원사로 남아 있던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의 15개 계열사는 전경련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정관 개정 승인을 받은 뒤 한국경제인협회 회원으로 이름을 올린다.
각 그룹은 어디까지나 '회원 자격 승계'일 뿐 적극 복귀는 아니라고 밝혔다. 한 4대 그룹 관계자는 "가입 절차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통합에 따라 자연스럽게 한경협 회원이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각 그룹은 이사회 보고 등 내부 검토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눈에 띄는 것은 한경연 회원사였던 삼성증권의 행보다. 다른 회사와 달리 흡수 통합도 반대하고 전경련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증권이 다른 4개사(전자·SDI·생명·화재)와 달리 준감위 협약사가 아니기 때문에 한경협 합류가 적절하지 않다는 준감위의 권고가 있었다"며 "이사회가 이를 수용해 반대 의사를 결정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삼성 준감위는 16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 한경협 합류를 앞둔 관계사에 ①합류하더라도 정경유착 등 불법 행위가 있으면 즉시 탈퇴할 것 ②회비를 낼 때 준감위의 사전 승인을 얻을 것 ③매년 한경협으로부터 연간 활동내용 및 결산내용 등에 대하여 이를 통보받아 위원회에 보고할 것 등 세 가지 권고 사항을 내걸었다. 그런데 삼성증권은 삼성 관계사라 준감위의 권고는 받을 수 있지만 협약사가 아니라 대외 후원금 심의는 받을 수 없는 상태다.
LG그룹 역시 한경연 회원사인 ㈜LG와 LG전자가 개최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위원회에서 "전경련이 혁신안을 제대로 실행하는지 살펴보고 주기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LG 관계자는 "전경련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①정치적 중립 유지를 위한 안전 장치 마련 ②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 ③글로벌 싱크탱크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준비 등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시민사회뿐 아니라 재계에서조차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온상이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강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재계에선 주요 그룹이 회비 납부, 회장단 참여 등 적극적 활동과는 거리를 두고 당분간 전경련의 혁신안 실천을 지켜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주요 그룹이 사실상 전경련 동반 복귀라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삼성증권의 복귀 무산이 어느 정도는 제동을 건 셈"이라면서 "전경련도 이를 우리 사회의 경고로 무겁게 받아들이고 혁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