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보관한 지 세 시간이나 됐네요. 이런 보온 기능이 전기를 은근히 많이 잡아먹어요.”
에너지의날(8월 22일)을 1주일 앞둔 16일 오후 서울 동작구의 기자의 집을 방문한 온실가스 컨설턴트 이경순씨가 부엌에 놓인 전기 압력밥솥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온 시 전력 사용량을 측정기로 확인하니 최대 55W(와트)까지 치솟았다. 종종 그러듯이 하루 종일 보온 기능을 사용한다면 취사에 드는 전기사용량 1kWh(와트시)를 초과하는 수준이다.
에너지효율등급 1등급의 최신형 밥솥이라고 방심한 사이 에너지가 이렇게 줄줄 새어 나갔다. 이씨는 “먹을 만큼만 밥을 짓고 남는 것은 보관했다가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전기를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는 ‘온실가스 진단·컨설팅’을 받았다. 환경부가 지원하고 기후위기 대응 민관협력기구인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가 주관해 가정·상가·학교 등 비산업부문의 에너지 사용량을 진단하는 사업이다. 전화로 상담을 신청하면 컨설턴트가 직접 방문해 에너지를 아낄 방법을 조언해준다. 비용도 무료다. 2016년 사업 시작 이후 지난해까지 약 30만 가구가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사업 취지는 생활 속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지만, 신청자 상당수는 전기요금 부담을 덜고자 컨설팅을 받는다고 한다. 기자 역시 거듭 오르는 전기료가 두려워 상담을 신청했다.
컨설팅은 가구 에너지 사용량에 대한 총평으로 시작됐다. 상담 전 관리비·전기요금 고지서를 제출하면 컨설턴트가 미리 과거 사용량과 인근 세대 대비 사용량을 분석해온다. 기자의 집은 7월 한 달간 158kWh를 사용해 같은 면적의 다른 세대(250~500kWh)에 비해 전력을 적게 썼다. 식구가 2인 1묘로 단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난달 배출한 온실가스는 약 75kg이나 된다. 30년생 소나무 18그루가 1년에 걸쳐 흡수하는 양이다. 도시가스 난방에 많은 에너지가 드는 겨울철까지 보내면 올 한 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얼마만큼 늘어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낭비되는 전기는 또 있었다. 로봇청소기 코드를 충전이 끝나도 늘 꽂아두고 있었는데 전력을 측정해보니 최대 13Wh가 나왔다. 매 순간 에너지가 허공으로 날아간 셈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매일 플러그를 꽂아 놓는 텔레비전, 셋톱박스도 대기전력이 높아 잘 관리해야 한다.
강필훈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 기획국장은 “전력차단 기능이 있는 멀티탭을 사용해 안 쓸 땐 꺼두고, 일일이 관리가 어렵다면 사물인터넷(IoT) 콘센트를 연결해 휴대폰으로 쉽게 조절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화장실 비데의 변좌 온도 유지 기능을 늘 켜두는 것도 전력 소모가 크다. 여름에는 최대한 덜 쓰고, 꼭 써야 한다면 변기 뚜껑을 닫아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여름철 전력 소모 주범인 에어컨은 주기적으로 필터를 청소해 효율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또 실외기가 햇볕에 가열되면 전력 효율이 낮아지는 만큼 돗자리 등으로 덮어놔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희망온도 26도 이상으로 가동하는 것"(이 컨설턴트)이다.
기자가 가장 걱정한 것 중 하나는 식기세척기였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큰맘 먹고 샀지만 직접 설거지를 하는 것에 비하면 전력 소모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상담을 신청하는 가정에서도 인덕션, 건조기 등 신식 가전에 대한 문의가 많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 기기가 소비전력 1,000W가 넘는 ‘전기 먹는 하마’라는 것. 식기세척기는 내년 7월에야 에너지효율등급이 적용되고, 일명 ‘스타일러’라 불리는 의류관리기는 아예 미적용 대상이다. 이 컨설턴트는 “필요해서 산 가전인 만큼 효율적으로 잘 사용하는 게 최선”이라며 “가능한 한 많은 양의 그릇을 한 번에 세척해 사용 시간을 줄이라”고 조언했다.
생활 속 온실가스 감축법의 핵심은 결국 불필요한 전기 사용을 줄이라는 것. 소소한 실천이지만 그 효과는 강력하다. 컨설턴트들이 상담 3개월 후 재방문해 확인한 결과 각 가정에서 전년 동월 대비 한달 평균 73kg의 온실가스를 줄였다. 전기사용량으로 따지면 153kWh를 아낀 것이다. 지난해 컨설팅에 참여한 가정·학교·상가 3만4,538곳이 감축한 온실가스는 총 123만9,574kg에 달한다. 소나무 30만 그루가 연간 흡수하는 온실가스 양과 맞먹는다.
강 국장은 “최근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직접 온실가스 절감을 실천하기 위해 진단을 신청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며 “적은 양의 전기도 한 달, 365일 꾸준히 줄이면 탄소 감축은 물론 전기료 절약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