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에서 발생한 성폭행 피해자가 범행 이틀 만인 19일 끝내 숨졌다. 피의자 최모(30)씨가 온라인에서 미리 구매한 '너클'로 피해자를 무차별 폭행한 사실이 알려지자, 흉기로 악용될 수 있는 '호신용 도구'의 쉬운 구매 절차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20일 최씨의 혐의를 강간상해에서 강간살인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최씨가 너클이라는 흉기를 써 피해자가 의식을 잃을 만큼 폭행했기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는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너클은 손가락에 끼워 주먹을 쥔 채로 쓰는 금속 재질 무기다. 최씨는 성폭행 목적으로 구입한 너클을 양손에 끼고 피해자를 때렸다고 진술했다.
이렇게 너클은 실제 흉기로 악용되고 있지만,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다. 특히 이상동기(묻지마) 범죄가 잇따른 최근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강력하고 저렴한 호신용품으로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모았다. 현재도 인터넷쇼핑몰에서 '너클'을 검색하면 개당 수천 원에서 수만 원 가격에 쉽게 살 수 있다. 신원 확인 절차나 연령 제한은 따로 없다.
너클을 이용한 강력범죄는 과거에도 있었다. 2021년 전북 전주시 중학교에선 남학생이 여학생을 너클로 폭행해 피해자가 정신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올해 1월엔 10대 운전자가 너클을 끼고 20대 남성을 폭행해 남성이 실명 위기에 처한 사건도 있었다. 공격 무기로 쓰인 사례가 잇따랐지만 규제 없이 방치된 것이다.
반면 호주, 캐나다 등 해외 주요 국가에선 너클 소지 자체를 제한한다. 미국은 전체 50개 주(州) 중 21개 주에서 너클 소지가 불법이고, 17개 주에선 소지 허가를 받아야 한다. 너클 판매·소지를 전면 금지한 캘리포니아주에선, 올해 주법원이 너클을 판매한 월마트에 50만 달러(약 6억7,000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2017년 캐나다에선 20대 남성이 해외에서 너클을 주문했다가 불법 무기 수입 등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다른 호신용품들도 흉기로 악용되긴 마찬가지다. 삼단봉은 대표적 호신용품으로 알려졌지만, 올해 5월 여성을 금속 삼단봉으로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20대 남성이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벽돌을 부수는 위력을 가졌지만 소지를 위한 신고나 허가는 필요 없다. 2021년엔 흉악범 이석준이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 집에 침입해 그 가족을 전기충격기로 공격하고 살해했다. 현행법상 3만 볼트보다 전압이 낮은 전기충격기는 자유롭게 구매, 소지할 수 있다.
경찰은 검문검색에서 너클 휴대를 적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휴대만으로 폭력행위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흉기로 악용될 위험이 있는 물품은 제작·판매 단계부터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관련 규제라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뿐이지만, 여기에 해당하지 않아도 너클처럼 살상무기가 될 수 있는 게 많다"며 "호신용품 정의와 소지 요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도 "각 용품의 신체 피해 정도를 수치화해 허가제나 등록제 등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