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들고 덤비던 그 환자 못 잊어요"... 위험에 노출된 정신건강요원들

입력
2023.08.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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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정신건강요원
방문 상담 시 위험한 상황 처하기도
'2인 1조' 안 지켜지는 경우 수두룩


"후배들에게 항상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말하죠. 상담 가면 조심하라고 매일 얘기해요. 그런데 현실은 어떤 줄 아세요? 일에 치여 안전은 생각하지도 못할 때가 많아요."

경기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일하는 17년 차 정신건강간호사 A씨는 과거에 당했던 봉변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고 한다. A씨는 은둔 생활을 하던 중증 정신질환자를 상담하던 중이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문이 닳도록 환자의 집을 매일 찾아갔단다.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마음을 조금씩 여는 환자의 모습에 A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났다. 여느 날처럼 환자를 방문한 A씨를 향해 망상 증세를 겪던 환자가 칼을 들고 달려든 것이다. 놀란 A씨는 맨발로 집을 탈출해 골목 끝까지 내달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머리는 산발이었고, 발은 유리 조각이라도 밟았는지 상처투성이였다. A씨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조금만 늦었더라면 큰 사고가 났을 수 있었다"며 몸서리쳤다.

잇단 흉기난동 사건으로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정신질환자 치료를 돕는 전문인력의 안전 문제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광역·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 260곳에서 근무 중인 상근직 정신건강전문요원은 9,802명이다.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정신건강을 다루는 보건소’다. 정신건강 전문의와 정신건강 간호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등이 전문요원으로 활동하며 정신질환자를 위한 상담과 치료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하지만 인력 부족 문제로 현장 요원들은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일한다. 요원들은 중증 정신질환자의 자택에 꾸준히 방문해야 하는데, 환자의 돌발 행동 탓에 신변의 위협을 받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전문요원 B씨는 "조현병 환자 집에 갔는데 거구의 환자가 속옷만 입은 채로 누워 있었다"며 "꽤 오래 상담한 환자였는데도 갑자기 무서운 느낌이 들어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기억했다. C씨는 "환자가 멱살을 잡거나 할퀴는 등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토로했다.

사고 예방을 위해 원칙상 2인 1조로 방문해야 하지만, 인력이 부족한 탓에 혼자 거구의 환자를 상대할 때도 많다는 게 요원들의 증언이다. 복지부는 "현장은 2인 이상 배치하여 안전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지만 현실에선 무용지물이다. A씨는 "매뉴얼대로 하면 실적 목표치를 낼 수가 없어서 이전에 많이 상담했거나, 동성인 환자면 혼자 방문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2019년 전문요원 1인당 관리 환자 수를 25명 수준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2020년 기준 센터 244곳 중 절반 이상(131개소)에서 1인당 환자 수가 25명을 넘었다. 전문요원 D씨는 "지난해 초만 해도 1인당 약 25명의 환자를 관리했는데, 지금은 40명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요원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항상 노심초사라고 한다. 전준희 화성시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안인득 사건) 때나 최근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어떤 센터에선 방검복을 구비했다고 들었다"며 "요원 개인에게 안전 책임을 지우는 현행 환경은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안전사고로부터 전문요원을 보호할 수 있는 체계적 대응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장진주 한국정신건강전문요원협회 사무총장은 "전문요원들은 1인당 맡은 환자 수가 점점 늘어나 과중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환자의 공격 등으로 트라우마를 겪기도 한다"며 "이젠 이들의 정신건강도 돌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오세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