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이 침투하면서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로컬 감성'(독특한 지역성)으로 주목받아온 마을형 관광지의 거주민이 지난 10년 새 반토막 나기도 했다. 감당할 수 없는 인파가 몰려들어 주민 삶을 침범하는 현상,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탓이다. 일부 마을은 인구 소멸 단계에 진입했다.
한국일보는 두 달 동안 전국 주요 마을형 관광지 11곳을 현지 취재하고 관련 자료를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관광∙지역 전문가의 자문을 토대로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서촌 세종마을·익선동 한옥거리·이화동 벽화마을, 부산 영도구 흰여울문화마을·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인천 중구 동화마을, 전북 전주 한옥마을, 강원 양양군 현남면(양리단길), 경남 통영시 동피랑벽화마을, 제주도 제주시 우도읍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최근 10년간 국내외 관광객이 크게 몰린 곳이다.
원주민의 ‘탈출 러시’는 관광지가 된 마을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된다. 마을 11곳의 인구(주민등록 기준)는 2013년 이후 10년간 평균 23% 감소했다. 특히 동피랑벽화마을은 10명 중 4명 이상(44.4%)이 마을을 빠져나갔고, 전주 한옥마을(41.1%)과 감천문화마을(40.3%)도 절반 가까운 주민이 이삿짐을 쌌다.
마을 11곳의 소멸위험지수를 계산해보니 동피랑벽화마을과 감천문화마을, 양리단길은 마을이 사라질 수 있는 '소멸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동화마을과 우도, 흰여울문화마을, 전주 한옥마을도 '소멸위험진입지역'으로 계산됐다. 소멸위험지수는 지역의 가임여성 인구(20~39세)를 전체 노인 인구(65세 이상)로 나눈 값이다. 0.2 미만이면 소멸고위험지역,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진입지역으로 본다.
토박이들이 마을을 등지는 이유는 임계치를 넘어선 불편함 때문이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관광객이 밀려들어 임대료가 오르고, 주차난과 소음과 쓰레기 투기 등에 지쳐 집을 내놓는 주민이 많다”고 했다. 마을이 뜰 기미가 보이면 개발업자가 찾아와 “좋은 가격에 집을 팔라”고 제안하는 사례도 흔하다. 결국, 거주민들은 외지인에게 집을 내놓지 않으면 마을에 남아서 불편한 삶을 감내해야 한다.
주민이 떠난 마을은 관광지로서의 매력이 뚝 떨어진다. 골목 상권 전문가인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상권별 차이는 있지만 주민과 외부인 구성이 7대3 정도가 이상적"이라면서 “주민 문화가 중심이 돼야 마을이나 골목이 차별화된 매력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을형 관광지의 수난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중국이 6년여 만에 한국 단체 관광 제한을 풀면서, 9월부터 유커(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방한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유커의 주요 행선지인 유명 마을과 골목은 엔데믹(코로나19의 풍토병화) 이후 미국과 베트남 등에서 온 관광객으로 이미 가득 차 있다.
특히, 북촌 한옥마을은 적정 수준을 넘어선 관광객 탓에 안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일보가 서울시의 도시데이터센서 정보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북촌의 주요 골목이 밀집한 종로구 가회동 5통에는 지난 6월 3일 오후 한때 596명의 방문자가 동시에 몰렸다. 종로구가 산정한 적정 최대방문자(357명·거주민 제외)를 200명 이상 초과했다. 일부 주민들은 “북촌이 제2의 이태원이 될 수 있다”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한데도 지자체에선 관광지가 된 마을에 얼마나 많은 방문자가 오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과 서촌 세종마을, 익선동 한옥거리 등이 있는 종로구는 “전체 외국인 중 20%가 북촌을 들르는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방문객 집계는 공식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지자체들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욕심에 마을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 방문객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면서 "주민 행복을 중심에 두고 전략을 다시 짜지 않으면 마을형 관광지의 소멸은 막을 수 없으며 관광 경쟁력도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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