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탈리아에서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경제 난국을 헤쳐 나가는 데 은행산업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길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정부 관료 입에서 '횡재세'가 오랜만에 언급됐다. 올해 초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 지 약 반년 만이다. 최근 유럽 국가들이 횡재세를 대폭 확대하며 은행권에도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은행들은 이번 발언으로 국내에서도 비슷한 기류가 형성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긴장한 모습이다.
횡재세는 기업 자체 경쟁력이 아닌 외부 요인으로 인해 거둔 초과이익에 물리는 세금을 뜻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크게 뛰면서 이익을 본 정유업계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호황을 누린 제약·식품·유통업계, 고금리 시대를 맞아 수익성이 좋아진 금융업계가 주된 대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현재 유럽연합(EU) 27개국 중 24개국이 횡재세를 시행하거나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에서 횡재세 개념이 본격적으로 언급된 건 올해 1월 '난방비 폭탄' 논란 직후다. 지난해 유가 급등으로 조 단위 수익을 내면서 직원들에게 1,000%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한 정유업계에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얘기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추 부총리가 두 차례에 걸쳐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고, 지난해와 달리 올해 1분기 정유업계 실적이 60% 이상 떨어지면서 관련 논의는 가라앉았다.
그러나 상반기 금융권이 역대 가장 높은 이자수익을 달성하자 '타깃'이 바뀌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거둔 이자수익만 20조4,90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가까이 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했음에도 시장금리가 크게 높아진 덕이다. 김주현 위원장이 횡재세 개념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배경이다.
금융업권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국가가 점차 늘고 있는 유럽 상황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탈리아는 올해 은행에 40%의 횡재세를 부과하기로 했고, 헝가리는 보험사를 포함한 모든 금융사를 대상으로 횡재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은행들은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올해 초부터 당국 요구에 따라 대출금리 인하, 예대금리차 공시 등에 나서고 있는데 횡재세 논의가 추가적인 '상생금융' 압력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횡재세 자체를 당장 도입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언급만으로도 은행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며 "당국이 고통 분담을 요구할 경우 거부할 수 있는 은행이 어디 있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