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건이 신림동을 완전히 죽여놨다니까요.”
18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림역 4번 출구 앞. 30년간 인근에 거주하며 공인중개사로 일한 김수연(58)씨는 쌓인 게 많은 듯했다. 지난달 ‘흉기난동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날 ‘성폭행’ 사건까지 터지면서 신림동 상권이 붕괴 직전에 내몰렸다고 했다. 두 사건 범행 장소 거리는 불과 2㎞ 차이다. 흉흉한 분위기에 김씨 사무실에도 손님 발길이 뚝 끊겼고, 이전부터 계약을 추진하던 고객들조차 주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씨는 “나부터 밤에 나가기 무섭고 사람이 가까이 오기만 해도 흠칫 놀라는데 어쩌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한 달 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강력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주민ㆍ상인 너 나 할 것 없이 신림동 전체가 패닉에 빠졌다. 외출 자제는 기본. 일상 회복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관할 구청이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지만, 단시간 내 불안감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이날 신림동 골목에는 종일 적막감이 감돌았다. 유동인구가 많은 점심시간에도 근처 경륜장 사무실을 찾은 어르신들과 택배 배달원만 가끔 거리를 다닐 뿐, 일반 시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날 성폭행이 발생한 A공원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주민들이 이야기꽃을 피웠을 공원 내 연못 주변은 텅 비어 있었다. 40년 동안 공원을 산책했다는 권모(77)씨는 “워낙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 다들 산책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주민들은 당국의 치안 대책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신림역 부근에서 만난 중학생 이모(14)양은 “성폭행 얘기까지 들어 이제는 진짜 이어폰을 빼고 다닌다”며 “부모님도 웬만하면 외출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양모(24)씨도 “커다란 가방을 들고 다니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으면 괜히 뚫어지게 쳐다보게 된다”며 “거리에서도 웬만하면 다른 행인과 일정 간격을 두고 걷는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상인들의 낙심도 이만저만 아니다.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49)씨는 “흉기난동 이후 손님이 30%나 감소했다가 지난 주말부터 조금씩 회복했는데, 어떤 돌파구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렌즈전문점 사장 신모(31)씨도 “당장 폐업을 고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게를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고 했다.
관악구청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특별상품권 발행, 별빛신사리 상권 르네상스 사업 확대 등 각종 상권 살리기 대책 수립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상인들은 이런 이벤트성 조치로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신림역에서 부동산 사무소를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이모(61)씨는 “신림동은 인근 주민들과 10대, 20대 외부인들이 유입돼야 하는 곳”이라며 "이미 선입견과 불안감이 만연해 있는데, 깜짝 유인책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