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초등학교 교사 A씨의 눈앞에서 2학년 학생들의 싸움이 벌어졌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흥분한 아이들을 떼어 놓기 위해 A씨가 직접 나섰다. A씨가 기억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학교에서 종종 겪었던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아 기억조차 희미해졌지만 A씨는 10년 만에 '아동학대 피의자'가 됐다.
당시 싸웠던 학생이 훈계 과정에서 '정서적 아동학대'를 했다는 혐의로 고소장을 냈기 때문. 합의금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10년이 지나 고소한 이유를 알지 못했던 A씨는 지난 5월 21일 첫 조사를 받았다. 그렇게 속앓이를 하다 지난달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정서적 아동학대(아동복지법 17조 5호)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로 결심했다.
A씨는 18일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며 "아동학대와 관련된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나의 억울함이 개인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서이초, 호원초 선생님들의 명복을 빌며 더 이상 죽음으로 내몰리는 교사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용기를 내 청구인으로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초등교사노조 관계자는 "상대방이 10년이 지나 신고를 한 이유까지 밝힌 게 아니라 A씨가 황당해한다"며 "학교에서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라 당시 기억도 잘 안 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초등교사노조는 정서적 아동학대 조항이 모호하고 포괄적이라 교사들의 생활지도를 제한하는 것을 넘어 아동학대범으로 무고하는 수단이 됐다고 헌법소원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노조 자문 변호사인 박상수 변호사는 해당 조항에 대해 "죄형법정주의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돼 위헌적 요소가 강하다"며 "교사 직업수행의 자유로서 훈육권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이로 인해 학생의 기본권인 교육권이 침해되는 면이 있다"고 밝혔다.
A씨 외에도 정서적 아동학대로 피의자가 된 교사는 적지 않다. 초등교사노조에 따르면 충북의 B교사는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수업을 방해한 학생을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는데, 학부모는 '우리 아이를 따돌렸다'며 고소했다. 경남의 C교사는 급식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학생에게 "교실에 있어도 된다"고 했다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당했다. 초등교사노조는 이들 모두 아동학대 혐의를 벗었지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울장애에 시달렸다고 했다.
초등교사노조는 헌법소원과 함께 국회가 아동복지법 개정에 나서도록 목소리를 낼 방침이다. 아동복지법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관이라 그간 교권보호 관련 법률 개정 과정에서도 세간의 관심을 비껴갔다. 1961년 제정(당시 아동복리법)된 아동복지법은 2000년 전부개정돼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가 금지행위에 추가됐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정서적 학대행위에 대해 세 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다. 박 변호사는 "이번에 위헌 판결이 나오지 않더라도 위헌 판단을 하는 재판관의 의견이 추후 입법의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