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가 의료기기인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했더라도 무면허 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초음파 사용 허용에 이어 한의사의 의료기기 활용 범위를 넓힌 것으로 소송 제기 10년 만의 결론이다. 다만 양ㆍ한방계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려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8일 한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면허자격정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0년 9~12월 서울 서초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뇌파계를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 활용했다. 그의 진료 방식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2013년 3월 A씨에게 45일간 한의사면허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의료법상 한의사에게 허용된 ‘한방의료행위’에 관련 진료 방법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A씨는 처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으로 맞섰다.
1심 재판부는 복지부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뇌파계를 사용한 진단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적 지식을 기초로 하는 행위로 볼 수 없다”며 “정확하게 진단하지 않으면 생명 또는 신체상의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뇌파계 사용에는 전문 서양의학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면서 1심과 다른 입장을 취했다.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가 없을 경우, 뇌파계를 이용한 의학적 진단 등이 현대의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무면허 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힘을 실었다. 특히 지난해 12월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을 허용한 전원합의체 판결 논리가 그대로 적용됐다. 당시 전원합의체는 △금지 규정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 △한의학적 원리 위배 여부 등을 종합해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의 적정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 기준에 비춰 A씨의 뇌파계 사용에도 문제가 없다는 게 대법원의 결론이다.
대법원 판결에 양ㆍ한방계는 희비가 갈렸다. 한홍구 대한한의사협회 법제부회장은 선고 직후 “한방 진료 시 과학적으로 응용 개발된 기기를 보조수단으로 사용해 보다 객관적 진료를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에서 “국민 건강과 생명을 외면한 불합리한 판결”이라며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해 장차 보건의료에 심각한 위해가 될 수밖에 없다”며 총력 투쟁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