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동산발 금융위기론 더 커져도...시진핑은 "인내하자"

입력
2023.08.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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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자산관리사 중즈, 유동성 위기 인정
부동산시장 위기, 금융권으로 확산 흐름
개발사 비구이위안 "채권 상환 불확실"
금리 추가 인하... 부양 효과는 미지수

중국 부동산 시장 위기가 금융 위기로 확산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중즈그룹을 비롯한 중국의 대형 자산운용사가 부채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동산·금융 업계의 유동성 위기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17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즈그룹 경영진은 전날 투자자들을 불러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부채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알렸다. 그러나 정부 대응은 소폭의 금리 인하 등에 그치면서 불안을 키웠다.

'부동산 위기→금융 신용성 타격→부동산 하락' 악순환 시작

중즈그룹의 채권 구조조정 계획은 부동산 업계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가 금융권으로 번지는 징후다. 부동산 개발 사업이 주요 투자처인 중룽 국제신탁은 중즈그룹의 계열사인데, 지난달 말부터 3,500억 위안(약 64조 원) 규모의 만기 상품 투자자들에게 현금 지급을 하지 못했다. 그 연쇄 효과로 중국 최대 민영 부동산 개발 업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이 지난 7일 채권 이자 상환에 실패하며 디폴트 위기에 몰렸다는 분석이 많다.

부동산 유동성 위기가 '중국판 리먼 사태' 수준의 금융 위기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한 상황에서 중즈그룹의 채권 구조 조정 계획이 공개되며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짙어진 셈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 위기론의 진원인 비구이위안도 디폴트 가능성을 인정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비구이위안은 16일 상하이증권거래소 공시에서 7일자 만기의 채권 2종의 이자 2,250만 달러(약 300억 원)를 지불하지 못했다며 "채권 상환의 불확실성이 크다"고 밝혔다. 유예기간 30일 안에 이자를 내지 못하면 디폴트를 맞게 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부동산 위기가 금융 시장 전망을 흐리고 이것이 다시 부동산 시장을 침체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 "경제 회복 과정의 문제...위기론은 과장"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16일 7일물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 계약을 통해 2,970억 위안(약 51조 원)을 시장에 투입했다. 15일 7일물 역레포 금리를 연 1.9%에서 1.8%로 낮춘 데 이어 지난 2월 이후 최대 규모의 단기 자금을 공급했다.

전문가들은 더 큰 폭의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여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달러 대비 위안화가 최근 16년 새 최저치로 떨어진 상황에서 추가 금리 인하가 환율 방어에 독이 될 수 있어서다. 중국 주요 국영은행들은 이번 주 들어 역외·역내 현물환시장에서 달러화를 팔고 위안화를 사들이고 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금리 인하로 인한 위안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정부는 의연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다. 리창 국무원 총리는 1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투자 촉진과 대량 소비 진작이 필요하다"며 내수 확대를 주문했다. 그는 "경제가 도전에 직면했다"면서도 부동산 규제 완화나 대규모 경기 부양책 발표 가능성은 시사하지 않았다.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도 같은 날 정례브리핑에서 중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두고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게 증명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인내하라"는 시진핑 메시지 뒤늦게 공개

중국공산당 학술지 치우스는 6개월 전 시진핑 국가주석의 "인내심을 갖자"는 연설문을 뒤늦게 소개했다. 치우스 15일 자에 지난 2월 공산당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시 주석의 연설문이 실렸는데 "발전과 안정과 지속가능성의 균형을 맞추며 긴 시야를 가져야 한다. 공동부유(함께 잘 살자는 시 주석의 경제 기조)는 여전히 장기적인 사명"이라는 내용이었다. 경제 위기론이 커지지만 정책 기조의 급격한 변화는 없으니 어려운 시간을 인내하라는 내부 단속 메시지로 해석됐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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