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을 향한 금융당국의 메시지가 5개월 새 딴판으로 변했다. 올해 초만 해도 금융권이 '이자 장사'를 하고 있다며 금리 인하를 압박하더니, 그 결과 가계대출이 늘어나자 되레 은행이 과도한 대출을 내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정부와 당국이 주도해 가계대출을 늘려놓고 이제 와서 모른 척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17일 금융감독원은 국내 17개 은행 은행장들을 소집해 내부통제와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했다. 최근 은행권에서 횡령, 사익추구 등 금융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데다 가계부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것에 대한 질타성 자리였다.
금감원은 급증하는 가계대출과 관련해 조만간 은행권 종합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부원장은 "가계대출 증가 원인을 상세히 분석하는 한편, (은행들의) 가계대출 취급 관련 법규 준수 여부와 심사 절차의 적정성 등을 진단하고 점검 결과 미흡한 점은 즉시 개선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이 원장도 "8월 중으로 가계대출 관리 내지 실패와 관련해 은행 현장 점검을 내보내 실질적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원칙이 작동하는지, 실질소득 성장을 넘어서는 대출이 일어나는지 등을 점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을 주요 타깃으로 삼은 것은 최근 은행권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등이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초장기 주담대 상품은 상환 기간이 길어 금융소비자에게 원리금 상환 부담을 덜어주지만, 대표적 대출규제인 DSR을 우회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실제 5대 은행이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취급액은 1조2,000억 원을 넘어섰고, 이에 힘입어 가계대출은 7월에만 6조 원이 순증했다. 월별 증가액으로는 1년 10개월 만의 최대 증가폭이다.
그러나 초장기 주담대 개념 자체가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나온 데다 지난해부터 주택금융공사가 주도해 50년 만기 상품을 내놓은 만큼, 가계부채 증가의 탓을 은행으로 돌리는 상황에 은행들은 다소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우려되자 올해 초 과감한 부동산 규제 완화책을 내놓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은행을 향해 '과도한 이자 장사'를 언급하며 대출 금리 인하를 압박한 것도 정부라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처음에는 금리 인하, 예대금리차 공시, 상생금융을 하라고 은행을 조이더니 이제는 대출을 과하게 내주고 있다고 은행을 탓한다"며 "정책에 일관성이 없이 땜질 처방이 나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은행권을 향한 압박은 가계대출만이 아니었다. 이날 금감원은 최근 연이어 터진 금융사고 배경에 내부통제 미비가 있다고 판단, 은행장이 직접 내부통제 체계를 점검하고 서명한 결과를 이달 말까지 금감원에 제출하도록 했다. 이 부원장은 "금융사고에 책임 있는 은행 임직원에 대해 엄중조치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