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자 만들지 않는 공정한 전환

입력
2023.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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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모든 변화는 음과 양을 수반한다. 그 변화의 성공 여부는 받아들이는 우리가 음양 간의 비율을 어떻게 배분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최근에 이뤄진 여러 정책들을 보면, 이런 면은 더욱 뚜렷해진다. 한미 FTA의 경우, 미국의 저렴한 농식품 수입으로 우리 농민의 피해가 예상되었고, 피해 예상 계층에 대한 보전대책이 협상진행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청계천 복원사업도 깨끗한 청계천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대신, 청계천에 터전을 잡고 있던 자영업자에 대해서도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주는 대책이 수반되어야 했다.

이렇듯 양과 음 사이의 균형 잡힌 정책적 안배는 2015년 발표한 UN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목표의 공식명칭은 '세상의 변혁'인데, 이를 위해서 반복적으로 강조한 것은 '누구도 뒤처지지 않도록 하겠다'라는 슬로건이었다. 국가 간에는 빈국의 발전을 우선시하고, 국가 내에서도 불평등을 해소하며, 주변화된 사람들을 포용하겠다는 것이다. 2050년 목표로 진행 중인 탄소중립 이행도 이렇듯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함은 불문가지이다. 실제로 탄소중립 이행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타격을 입는 산업들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높은 발전(37.3%), 철강(19.2%), 석유화학(9.5%) 분야가 대표적인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탄소중립 목표와 수많은 국민의 생계가 달린 이 산업들의 보호·보전대책 간의 균형이 적절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매년 12월 전 세계적 관심하에 개최되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에서도 이미 '공정한 전환(Just Transition)'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2018년 제24차총회(COP24)에서 채택된 실레지아 선언(Silesia Declaration)이 그것이다. 키워드는 첫째 노동력(workforce)의 공정한 전환, 둘째 번듯한 직업과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 & quality jobs)로 요약된다. 이후 정립된 공정한 전환의 공통원칙은 5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적극적으로 탈탄소화 고취하기, 둘째 해당 부문에서 탄소-잠김과 더 많은 패배자 만들지 않기, 셋째, 영향 받는 지역을 지원하고, 폐쇄·축소에 영향 받는 노동자, 가족, 공동체 지원하기다. 넷째는 환경피해를 복원하고 관련 비용이 민간에서 공공부문으로 이전되지 않도록 보장하기, 다섯째는 투명하고 포괄적인 계획·절차 보장하기가 그것이다.

동 선언 이후, 각국에서는 공정한 전환을 위한 제도적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EU집행위는 2020년 유럽 그린딜 투자계획과 공정한 전환 메커니즘을 발표한 바 있고, 미국에서는 석탄지역 지원정책으로 오바마 정부에서는 파워플러스플랜(PPP), 바이든 정부에서는 관련 법안에 석탄지역 활성화 지원을 위한 구체적 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소벤처기업부를 중심으로 중소기업 탄소중립 전환지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충남과 인천 등에서는 다배출 공정전환 지원사업에 참여할 기업들을 모집하고, 울산에서는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지원하기도 한다. 이를 발판으로 탄소중립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1차 목표뿐만 아니라, 2차적인 일자리 및 지역사회의 충격을 완화하는 노력이 한층 강화되어야 하겠다. 왜냐고? 기후도 변하고 있고, 우리 또한 변해야 하니까.


나석권 SK사회적가치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