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323편의 관객수가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감염병 사태에 따른 매출 부진과 맞물려 관객수 조작이 영화계 관례처럼 치부됐지만, 시장질서를 저해하고 소비자의 영화 선택권을 왜곡하는 만큼 제도 개선이 불가피해 보인다.
서울경찰청 반부패ㆍ공공범죄수사대는 14일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국내 멀티플렉스 3사와 24개 배급사 관계자 등 69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16일 밝혔다. 관객수 조작 목록에 이름을 올린 대표 영화는 제74회 칸 영화제 초청작 ‘비상선언’과 ‘뜨거운 피’, ‘비와 당신의 이야기’ 등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출연한 다큐멘터리 ‘그대가 조국’도 포함됐다.
수사 결과, 이들은 2018년 3월부터 올해 6월까지 ‘박스오피스(영화 흥행 수입)’ 순위를 높이려 특정 상영 회차가 매진된 것처럼 발권 정보를 허위로 만들어 이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에 입력하는 수법을 썼다. 한 사람이 일부 시간대 티켓 수백 장을 구매하는 등 267만 건의 조작 정황이 확인됐다.
박스오피스 순위는 관객들이 영화를 정하는 바로미터 지표라 제작사와 배급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KOBIS를 운영하는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관객수, 매출 등을 토대로 산정한다. 특히 관객수는 상영관이 직접 영진위 전산망에 전송하는 방식이어서 상영관과 배급사가 짜고 조작한 숫자를 그대로 입력해도 검증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경찰은 이런 행태를 영진위의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봤다.
관객 부풀리기는 영화계에서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통상 배급사와 상영관이 상영 계약을 맺을 때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에는 홍보 목적으로 티켓을 소진하는 조항도 있다고 한다. 배급사가 영화표를 대량 구매해 할인티켓 명목으로 뿌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배급사가 티켓을 뿌리면 발권 처리되지만, 실제 관객 규모는 그에 못 미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관객수 조작 의혹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영화 비상선언 관객수가 부풀려졌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실제 해당 영화가 심야 시간대 이례적으로 대거 매진된 사실이 드러나자, 배급사 측은 “심야 테스트 발권 물량”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3만 건이 KOBIS 통계에 포함된 것으로 밝혀져 뒤늦게 취소분이 반영됐다.
이에 경찰은 올 6월 멀티플렉스 3사와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키다리스튜디오 등 배급사 3곳을 압수수색하고 개봉 영화 462편, 배급사 98개사를 상대로 수사를 확대했다.
관행이라 해도 불법이 분명한 만큼 경찰은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9조를 보면, KOBIS에 관객수 자료를 입력하는 주체는 ‘영화상영관 경영자’로 특정돼 있다. 실질적 조작 주체는 배급사이나 처벌 근거가 없는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처벌 대상을 배급사로 확대해 책임을 묻고 조작 행위를 방지할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