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전례 없이 일본에 있는 '유엔군사령부 후방기지'를 언급했다. 한반도 유사시 병참지원의 핵심인 곳이다. 18일 한미일 정상회의에 앞서 일본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한미일 협력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아울러 지난해 경축사에서 '이웃'이라 칭한 일본을 올해는 '파트너'로 높여 불렀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일본은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며 "한일 양국은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로서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표현한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올해 들어 일본과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를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과거사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으려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읽히는 대목이다. 실제 이날 경축사에서 한일 역사 문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안보'에 방점을 찍어 한일 협력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유엔사 후방기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일본의 역할을 강조할 때 등장하는 상징적인 장소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에 유엔사 후방기지 7곳이 있다는 사실은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며 "좋고 싫고를 떠나 일본이 실질적으로 한반도 안보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설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일 안보 협력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는 국내 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물론 일본은 유엔사 전력 제공국은 아니다. 하지만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유엔사 후방기지가 있다는 점에서 유사시 협력의 필요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유엔사 후방기지는 한반도에 신속 대응 전력을 보내고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게 주 임무다.
특히 미 7함대사령부의 거점인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핵추진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의 모항이며, 미 5공군사령부인 요코다 공군기지에는 C-130 등 대형 수송기가 배치돼 비상상황 발생 시 병력과 물자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오키나와 화이트비치 해군기지는 한반도에 가장 빨리 투입되는 대규모 증원 병력의 주둔지로, 주일 미 제3해병기동군은 하루 만에 한반도에 투입돼 작전에 나설 수 있다.
이외에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안보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대서양 유럽의 안보, 글로벌 안보와 같은 축 선상에 놓여 있다"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의 협력 강화를 역설했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지원에 힘을 쏟는 것은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자유, 평화, 번영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를 넘어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역할을 확장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겼다.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윤 대통령이 추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 발돋움하려면 '자유를 위한 연대'를 통해 우리 능력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라며 "경축사에 예년과 달리 외교 관련 메시지가 많았던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