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1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꾸준한 ‘강달러’ 기조에도 안정세를 보였던 루블화는 올해 들어 꾸준히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제 외환시장에서 루블화 환율이 한때 달러당 100루블을 돌파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인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집중되며 환율이 떨어지자, 러시아 당국은 국민들을 상대로 환전 금지와 외국인 주식 매도 금지 등 정책을 펼치면서 적극적 방어에 나섰다. 또 고유가 등 러시아 경제에 유리한 주변 환경 탓에 지난해 루블화 가치는 달러당 50루블 선까지 치솟기도 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올해부터다. 올 들어 루블화의 가치는 30%나 급락했다. 전 세계에서 러시아보다 화폐 가치가 더 많이 떨어진 국가는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 튀르키예뿐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 가치 하락 원인으로 “교역 조건 악화”를 지목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무역을 통해 러시아에 발생한 수익은 지난해에 비해 85%나 감소하는 등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됐다. 외부 전문가들은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지출을 대폭 늘린 탓에 통화량 증가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했다고 짚었다.
루블화 가치 하락은 러시아 경제에도 악재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물가상승률을 6.5%로 내다봤다. 러시아 화폐 가치 하락은 수입 상품 가격 상승으로 연결되고, 그 결과 물가 전체가 자극을 받게 된다는 이유다. 전시 상황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이를 더 부각시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 남성들의 징병으로 발생한 노동 현장 공백을 채워 온 중앙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이 루블화 하락에 러시아가 아닌 다른 국가로 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다음 달 15일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도 있다”고 예고했다. 그러면서도 “루블화 폭락이 국가 금융 안정성에 위협이 되진 않는다”며 시장의 우려엔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