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막바지를 향해 가는 요즘, 보양식 메뉴 선정이 식사 시간의 큰 숙제이다. 뜨거운 삼계탕이 좋을까, 차가운 냉면이 더 좋을까. 온탕과 냉탕을 드나드는 아이처럼 오락가락 고민하는 사이에 요즘 나의 입맛을 꽉 잡은 보양식 재료가 등장했다. 고유의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쫄깃쫄깃한 오리고기가 그 주인공이다.
오리고기는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식재료지만, 오래전부터 오리고기를 즐겨 먹었던 대표적인 문화권으로 단연코 중국과 프랑스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우리에게 '베이징 덕'으로 친숙한 요리 '베이징 카오야'는 무려 3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오리고기 껍질에 물엿과 양념을 발라 높은 온도에서 구워 만드는데, 물을 이용한 조리법보다 농축된 풍미와 껍질의 바삭한 식감이 일품이다. 프랑스에서는 '오리 콩피'를 즐겨 먹는다. 오리고기를 오리기름에 넣어 천천히 익힌 후 그대로 식혀서 보관한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다시 가열해 먹는다. 서양에서는 버터나 돼지기름보다 오리기름이 더 고급 식재료로 취급받는다. 이 외에도 송로버섯, 캐비아와 함께 세계3대 미식으로 손꼽히는 푸아그라 역시 오리 또는 거위의 간으로 만든다.
한국에서 오리고기는 초반에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조선 시대 필사본 한글 조리서에 닭고기, 소고기를 이용한 다양한 조리법이 실려 있지만, 오리 조리법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다 1946년 '조선음식 만드는 법'에서 오리백숙이 등장한다. '우리 습관으로는 닭이나 생치(꿩)를 잘 먹고 오리나 거위 같은 것은 흔히 먹지 않지만 잘 친하면 닭고기 맛보다 못하지 않느니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 당시 오리고기는 닭고기나 소고기의 대용으로서 취급되었던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직접적 기록 외에도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 또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 등의 속담만 살펴봐도 오리가 비주류 식재료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오리고기는 닭고기처럼 담백하지 않고, 잘못 손질하면 노린내가 나기 쉽다. 이러한 조리 과정의 어려움 또한 오리고기가 선호되지 않는 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예로부터 동서양의 문화에서 오리를 소재로 한 예술 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리는 헤엄치고, 걷고, 나는 것이 모두 가능한 신비한 물새로서 농사에 꼭 필요한 씨앗과 비를 가져다주는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문화 상징성과 달리 식재료로서의 오리는 처음부터는 그 가치를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오리의 강력한 해독능력과 다양한 영양성분이 주목받으며 국민 보양식재료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오리는 '날아다니는 등 푸른 생선'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돼지고기의 두 배, 닭고기의 다섯 배, 소고기의 열 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의 불포화지방산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포화지방산은 혈액 순환과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 도움을 주는 이로운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지방은 지방이다. 자신의 체질이나 컨디션에 따라 적정량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며, 많은 양의 기름이 부담스럽다면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를 활용해서 담백하게 조리하는 방법도 추천한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는 '훈제오리'가 아닐까. 훈제 오리고기를 활용하여 집에서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보양식으로 '오리고기 시금치 덮밥'을 추천한다. 철분이 풍부한 시금치를 듬뿍 넣고, 굴소스로 간을 내어 맛과 영양을 한 그릇에 담는 요리이다. 레시피는 기름을 두르지 않은 팬에 오리고기를 굽는다. 구운 오리고기는 다른 그릇에 담아 두고 같은 팬에 채 썬 양파를 볶는다. 양파가 불투명하게 반쯤 익으면 굴소스 1큰술, 물 150ml, 구워 놓은 오리고기를 넣고 3분간 졸인다. 여기에 전분물을 풀어 농도를 되직하게 맞춘다. 마지막에 시금치를 넣고 불을 꺼서 잔열로 시금치의 숨을 죽이면 완성이다. 취향에 따라 마늘, 대파, 양파 등을 추가해도 좋다.
옛말에 "소는 누가 줘도 먹지 말고, 돼지는 주면 받아먹고, 오리는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먹어라"라는 이야기가 있다. 내 돈으로 꼭 사 먹어야 할 만큼 건강에 좋은 오리고기로 여름의 마지막을 더 맛있게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