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에 묶였던 이란 자금 60억 달러(약 8조 원)가 풀렸지만, 국내 기업이 이란 기업으로부터 받지 못한 수출대금 문제를 해결하기까진 '첩첩산중'이다. 이란 기업이 망했거나 수출대금을 주기 어렵다고 잡아떼면 미수금을 날릴 가능성도 있다.
14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한국 내 동결됐던 이란 자금과 대(對)이란 수출기업의 미수금 간 연결고리는 이란 중앙은행 명의로 우리은행, IBK기업은행에 개설된 원화결제계좌다. 미국이 핵 개발을 이유로 이란 제재에 착수한 2010년 한국과 이란은 원화로 거래하는 원화결제계좌를 만들었다. 달러 거래가 막히자 교역을 이어가기 위해 뚫은 우회로였다.
한국 기업이 이란 물품을 구입하고 줘야 할 돈을 원화결제계좌로 넣으면, 해당 이란 기업은 이란 중앙은행에서 자국 통화로 가져간다. 대이란 수출기업이 수출대금을 받는 구조는 정반대다. 한국에서 물품을 산 이란 기업이 자국 중앙은행에 입금한 수출대금을, 한국 기업은 이란 측 자금이 들어있는 원화결제계좌에서 원화로 수령한다.
이번에 풀린 원화결제계좌 내 이란 자금은 트럼프 정부가 이란 제재를 강화하면서 2019년 5월부터 접근이 차단된 원유대금이다. 원화결제계좌가 묶이면서 수출대금을 받기 어려워졌던 대이란 수출기업은 동결 해제를 계기로 미수금을 돌려받길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60억 달러를 이란에 송금하면서 대이란 수출기업 미수금 지급을 위해 5,000억 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미수금을 받은 대이란 수출기업이 있긴 하다. 대이란 수출기업 40여 곳은 2021년 상반기 한국, 미국, 이란 정부 간 협의에 따라 미수금 7,000만 달러(당시 약 805억 원)를 회수했다. 이란 제재 강화 이전에 발생한 거래를 두고 이란 기업이 한국 기업에 줘야 할 수출대금이 있는 경우 원화결제계좌를 예외적으로 열어줬기 때문이다.
산업계 쪽에선 이란 자금 동결이 풀리고, 국내 원화결제계좌에 미수금 몫 5,000억 원도 있어 대이란 수출기업이 수출대금을 받는 건 시간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정부 쪽 얘기를 종합하면 미수금 확보는 2021년 회수 때보다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2년 전과 비교해 미수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기업을 추려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국 기업과 거래했던 이란 기업 중 상당수가 도산했거나 미수금 지급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기업이 자국 중앙은행에 미수금을 입금하지 않는 이상, 한국 기업이 국내 원화결제계좌에서 밀린 수출대금을 가져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란 제재 강화 이후에 이란과 거래한 기업도 일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기업은 아직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이란 제재를 위반한 것이어서 미수금이 있어도 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수금 문제는 이란 자금 동결 해제와 별개"라면서 "대이란 수출기업이 미수금을 받기까진 따져볼 게 적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