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광복절을 맞아 이중근 전 부영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을 대거 특별사면했다. ‘경제 살리기‘에 방점을 찍었다는 설명이지만, 경영비리로 처벌받은 기업인 특사를 반복하는 것이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경제인, 정치인, 관료, 서민생계형 사범 등 2,176명의 특별사면을 단행한다고 14일 밝혔다. 효력은 15일부터 발생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사회를 통합하고 국력을 집중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특사에는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일시적 자금 사정 악화로 처벌받은 중소기업·소상공인, 경미한 방역수칙 위반 사범도 포함됐다. 소프트웨어업, 여객·화물 운송업, 운전면허 등 행정제재 대상자 81만1,978명에 대해 특별감면 조치가 시행되고, 모범수 821명도 가석방됐다.
정부가 강조한 특사 키워드는 ‘경제’였다. 신년 특사 대상이 주로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였던 것과 달리 광복절 특사는 대기업 총수, 중소기업인, 기업임직원 등 105명이 혜택을 받았다. 수백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중근 전 회장, 100억 원대 배임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이 사면·복권됐다. 이들은 5년 취업제한 규칙에 따라 경영 활동에 발이 묶인 상태였다.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김기문 제이에스티나 대표(중소기업중앙회장)도 특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사회적 물의를 빚은 기업인도 이름을 올렸다. ‘황제 보석’ 논란 뒤 만기 출소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운전기사 갑질’ 사건으로 처벌받은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포함됐다.
그러나 정관계 인사에 대한 특사 잣대는 높았다. 김태우 전 서울 강서구청장,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치인 4명과 전직 고위공직자 3명이 사면·복권됐다. 김 전 구청장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감찰 무마 의혹 폭로 과정에서 공무상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올해 5월 형이 확정됐는데, 유죄 확정 3개월 만에 복권됐다. 내부자로서 고발했던 사건(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유죄로 확정된 점을 고려했다는 게 법무부 설명이다. 소강원 전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참모장 등 세월호 유가족 사찰에 관여해 유죄가 확정됐던 군 간부 상당수도 복권됐다.
경제인에게 후하고 정치인에 엄한 기준에 대해, 정부는 “(이번 특사가) 최우선 과제인 경제 살리기에 동참할 기회를 부여하는 차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특사로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기업인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긴 하지만, 횡령·배임 등 경영비리에 연루된 경영인의 족쇄를 쉽게 풀어줬다는 지적은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을 수사하던 검사 출신 대통령이 사면에 융통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면서도 “당장은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대기업 총수들이 범법 행위에 무감각해질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