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에서 8일(현지시간) 일어난 산불이 나흘째 확산하면서 1만 명이 넘는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11일까지 파악된 사망자는 80명으로 늘어났고, 행방불명된 사람도 1,000명에 달한다. 1961년 쓰나미 사태 당시의 사망자 수(61명)를 넘어서는 하와이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에 대피소와 식량 수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날 하와이 당국은 화재 사망자 수가 80명(오후 9시 기준)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또 최소 1만1,000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주택 및 상업 건물 1만2,400채의 전력도 끊겼다. 이날 미국 CNN방송은 산불로 3,088채의 주택에서 최소 13억 달러(약 1조 7,316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당국에 따르면 불길은 50~80%가량 진압됐지만, 1,000명 이상이 실종된 상태라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 비센 마우이시장은 “지금까지 희생자들은 건물들 밖에서 발견됐다”며 “구조물 내부는 아직 수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하와이의 현재 상황에 대해 “폭격을 맞은 전쟁터에 비유할 수 있다”며 “제대로 된 건물이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ABC방송과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마우이섬에는 와일루쿠 전쟁기념관 등 총 6곳의 대피소가 설치됐다. 지역의 학교나 교회, 커뮤니티 센터 등도 임시 대피소로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섬이라는 환경 탓에 침구나 세면도구 등 생활용품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마우이 푸드뱅크의 리처드 유스트는 “구호품의 긴급 해상운송조차 2주가 걸린다”면서 “우리에겐 현재 섬에 있는 제한된 자원들만 있는 것”이라고 CNN에 설명했다.
하와이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비극 앞에서도 서로를 도우며 버티고 있다. 그나마 화재로 인해 피해가 덜한 경우 지인에게 집을 내주거나, 보트로 구호물자를 나르는 일에 손을 보태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집 앞마당에서 이웃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동네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등 갈 곳 잃은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라하이나 지역의 주민 로리 닐슨은 “정부가 여기서 우리를 돕고 있다고 생각하나”라며 “우리를 먹여 살리는 건 바로 지역사회”라고 말했다.
하와이에 주택을 소유한 유명인들도 구호에 나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마우이섬에 방대한 농장을 소유하고 있는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전날 와일루쿠 대피소를 찾아 이재민들에게 직접 구호물자를 전달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뭐가 필요한지 확인하고 대형마트에서 베개, 샴푸, 기저귀, 침대보 같은 것들을 사 왔다”고 말했다. 마우이섬에 부동산을 갖고 있는 아마존 창업주 제프 베이조스도 이날 마우이섬 재건을 위해 1억 달러(약 1,332억 원)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하와이 명물이었던 150여 년 수령의 반얀트리 나무가 잎과 잔가지들이 불에 타고 까맣게 그을리기는 했어도 기둥과 굵은 가지들이 건재한 모습으로 확인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높이 18m가 넘는 이 나무는 1873년 인도에서 들여와 심은 미국에서 가장 큰 반얀트리로,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넓은 그늘을 제공해 주며 사랑받아 왔다. CNN 방송은 산불을 견딘 반얀트리가 “마을로 돌아와 피해 상황을 보게 된 현지 주민들에게 희망의 신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