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 해제' 이란 동결자금… 한·이란 관계 정상화 물꼬 틀까

입력
2023.08.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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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이란 제재 유지로 당장 회복 어려워"

한국 금융기관에 묶여 있던 이란의 8조 원대 원유대금 지급 문제가 해결되면서 한국과 이란 관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가 여전히 유효하지만, 한·이란 관계의 최대 걸림돌이 제거된 만큼 관계 개선에 최소한의 여건은 마련됐다는 평가다.

이란은 그동안 한국 선박 나포 등으로 동결자금 반환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왔다. 2021년 1월 이란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해협 인근 해역에서 한국 국적 선박과 선원을 나포한 게 대표적 사례다. 당시 이란 측은 해양환경법 위반을 이유로 들었지만, 실상은 동결자금 문제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양국은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 발언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이란은 아랍에미리트(UAE) 아크부대를 방문한 윤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이란" 발언을 빌미 삼았고, 양국은 자국 주재 상대국 대사 초치를 주고받았다. 당시 이란 측은 한국 내 동결자금 문제 해결을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국과 동결자금 분쟁 해결을 위한 국제중재회부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는 등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제소라는 법적 절차를 공식화했다.

이번 동결자금 지급으로 이러한 악재는 일단 해소된 모양새다. 신양섭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란의 입장에서 한국에 가장 섭섭하게 생각해 왔던 문제가 해결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입장에서도 중동 내 이란의 위상 등을 고려할 때 이란과의 관계 복원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란과의 교역 정상화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란핵합의(JCPOA) 탈퇴로 본격화한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제재 이후 급감했던 양국 교역규모가 이전으로 회복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돼 있다. 실제 2017년 120억 달러 규모였던 양국 교역량은 2020년 60분의 1 수준(1억9,000만 달러)으로 급감한 이후 매년 2억 달러 안팎 규모에 머물러 왔다.

미국이 이란과 원유 수입 재개를 논의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최근 국제 유가가 불안한 상황에서 이란산 원유 수입 재개가 이뤄질 경우 한국도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재 이전 국내에 수입된 이란산 원유의 70%가량은 콘덴세이트(초경질유)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 선호도가 높았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동결자금 문제 해결이 한·이란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다만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고 있어 곧바로 양국 교역과 관계 개선이 예전 수준으로 활성화될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전망했다.

남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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