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명 사망·건물 1700채 전소'...하와이 산불 키운 건 기후변화였다

입력
2023.08.1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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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이섬 화재 사흘째...이재민 수천 명 발생
악화된 가뭄 지속...이상기후가 산불 키웠다
주택·관광지 전소...바이든 '재난 지역' 선포

세계적 관광지인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산불이 10일(현지시간)로 사흘째 계속되면서 사망자가 50명을 넘겼다. 관광지와 마을은 잿더미가 됐고 주택 등 건물 1,700여 채가 전소됐다. 미국 정부는 하와이를 대규모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하와이 역사상 최악의 이번 산불을 키운 주범은 기후변화였다.

가뭄에 마른 풀이 불쏘시개 돼...이상기후가 피해 키웠다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와 AP통신 등은 발화 원인은 기후변화가 화재 피해 규모를 급속도로 키웠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도 “기후변화가 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이 화재로 목도하고 있는 바”라고 했다.

최근 몇 주 동안 마우이에선 가뭄이 악화했다. 수풀이 건조한 공기에 바짝 마르면서 불이 잘 옮겨붙는 건초가 됐다. 미국 통합가뭄정보시스템(NIDIS)에 따르면, 이번 주 마우이섬 토지의 83%가 '비정상적으로 건조한 상태'이거나 '심각한 가뭄 상태'였다.

열대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기니그라스' 등 외래종 풀이 토종 식물을 몰아낸 것도 화근이 됐다. 기니그라스 등은 물을 거의 주지 않아도 키가 최대 3m까지 자라며 쉽게 마른다. 성능 좋은 불쏘시개인 셈이다. 클래이 트라우어니히트 하와이대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건조한 환경, 줄어든 강우량이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 화재를 더욱 예측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리케인 ‘도라’가 일으킨 강풍이 산불이 번지는 속도를 끌어올렸는데, 이 역시 기후변화가 원인이 됐다. 하와이는 도라의 이동경로에서 800㎞ 떨어져 영향권 밖에 있었지만, 도라 주변의 기압 차이가 이례적으로 커지면서 발생한 최고 시속 130㎞의 강한 바람이 마우이에 불어닥쳤다.

섬 속 삶의 터전·경제·역사 모두 불타...복구 지원 나선 정부

인명·재산 피해는 실시간으로 커지고 있다. 현지시간 11일 오전 5시 기준 사망자는 55명으로 늘었다. 일부 지역엔 전기와 통신이 끊겨 사망·실종자 집계가 어려운 상태다. 그린 주지사는 “1960년 쓰나미 당시 사망자(61명)를 넘어설 것 같다”며 “하와이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목숨을 건진 주민 수천 명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주민 2,100명 이상이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불이 꺼진다 해도 관광업 위주의 지역 경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19세기 하와이 왕국의 수도인 라하이나는 전체 면적의 약 80%가 전소됐다. 하와이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과 200년 된 와이올라 교회 등이 사라졌고 숙박시설 100여 곳 이상이 불탔다. 민간 기상예보업체 아큐웨더에 따르면, 이번 산불 피해액은 최대 100억 달러(약 13조 원)로 추산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하와이를 재난지역으로 승인해 연방자금으로 복구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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