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원제 무력화와 공천 페널티 확대를 골자로 한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혁신안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비이재명계는 대의원제를 무력화한 이번 혁신안은 이재명 대표 등 친이재명계의 당권 사수안에 불과하다고 반발했고, 친명계는 강성 당원들을 대동한 기자회견에서 환영 입장을 밝혔다. 오는 16일 혁신안 수용 여부를 논의할 의원총회를 앞두고 세 대결을 벌이는 양상이다.
당장 혁신안 발표 다음날인 11일 최고위원회의부터 공개적인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친문재인계로 비명계로 분류되는 고민정 최고위원은 "혁신위는 대의원제도를 사실상 폐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며 "총선에는 전혀 적용 사항이 없고 오로지 전당대회, 즉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곳에만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이 선출해야 할 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국민의 민생과 관련된 시급성을 다투는 것도 아닌 일로 이런 무리수를 두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사실상 친명계 일색인 지도부에서 비명계 최고위원이 혁신안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친명계 서은숙 최고위원은 "더 많은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 혁신에 저항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혁신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낡은 존재로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 함께 자각했으면 좋겠다"고 맞섰다. 지도부 간 이견에 이 대표는 최고위 후 기자들과 만나 "혁신안은 혁신위의 제안이기 때문에 당내 논의를 거쳐 합당한 결과를 만들어내도록 하겠다"며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혁신안 평가를 두고 당은 둘로 쪼개지는 분위기다. 강경파인 김용민 의원과 양이원영 의원은 이날 강성 당원들과 국회 기자회견을 열어 비명계를 압박했다. '개혁을 요구하는 민주당 전국 대의원 연합' '더민주혁신전국혁신회의' 등 친명 성향 단체들은 이 자리에서 "당원들이 환호하는 혁신안을 국회의원이 반대해 좌초시키고자 한다면, 이는 의원 본인에게 크나큰 역풍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혁신안을 의총 등이 아니라 전 당원 투표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도 SBS 라디오에서 "당대표를 뽑는데 대의기구인 대의원들에게 60표의 가치를 주는 건 평등선거에 반한다"며 "1인 1표로 가는 건 당연하고 상식적인 이야기"라고 혁신안을 두둔했다.
비명계 홍영표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김은경 혁신위는) 방탄정치 오명을 극복하고 당 정체성을 정립해야 했지만 조기 종료를 하면서 생뚱맞은 제안을 했다"며 "지금 안은 그저 '당권 사수안'에 불과하다"고 직격했다. 비명계 전해철 의원도 "돈 봉투 의혹과 가상자산 관련 의혹, 극단적인 팬덤정치의 부작용 등 민주당을 위기로 몰고 간 문제점을 직시하고 쇄신책을 내놓아야 했지만 체포안 가결 당론 요구 등을 주장하면서 내부의 갈등과 분열의 빌미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당내 최대 의원모임 '더좋은미래'도 입장문을 통해 "대의원 투표 반영 여부 등은 국민적 관심 사안도, 국민이 바라는 민주당 혁신의 핵심도 아니다"라며 "이 문제로 당내 논란과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의원제 관련해선 총선 전까지 논의를 유보하자고 지도부와 의총에 제안했다.
친문 의원 모임인 '민주주의 4.0'은 "대의원제도는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당이 어려운 지역의 의견 반영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운영해 왔다"며 "혁신안은 당내 민주주의 원칙만 강조하며 당 조직체계나 대의기관 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발표됐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