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름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제목을 읽는 순간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기억하니? 나야, 지호.'
잠시 숨을 고르고 메일함을 클릭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지호였다.
28년 만이라고 했다. 너무 오래되어 이렇게 불쑥 편지를 보내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연이 끊어지고 말 거 같아서 어렵사리 알아낸 이메일 주소로 연락을 시도한다고 적혀 있었다.
가끔 이름과 얼굴을 떠올릴 때면, 몸 어딘가가 저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처음 친구가 된 사람. 직장에서 만난 다른 동년배들에게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면서도 그와는 쉽게 말을 텄다. 큰 키에 오뚝한 얼굴. 꼬이지 않은 성격에 업무 능력도 남달랐다. 표정이든 말투든 행동이든, 한눈에 봐도 세련된 서울 아이였다. 나는 그 친구를 많이 좋아하고 선망했다.
함께 어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1년이 안 되는 기간 회사 동료로 일했고, 이후 3년 넘게 종종 둘이 만나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미술관과 콘서트홀을 들락거렸다. 오래갈 줄 알았던 둘의 연이 툭 끊긴 건 나의 문제로 인해서였다. 우리가 스물여덟 살 나던 해 가을에 친구가 결혼했다. 그의 결혼식 전날 밤,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과음을 한 나는 거리에서 쓰러졌다. 과로와 장 출혈이 겹쳤다고 했다. 여러 날 동안 손등에 링거를 꽃은 채 병원 신세를 졌다. 퇴원 후 그의 신혼집 전화번호로 몇 번 연락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결혼식에 못 간 게 미안하면서도 원망스러운 마음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친구는 왜 내게 전화해 사유를 캐묻지 않는 걸까. 음식물도 먹지 못한 채 병실에 누워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눈물 흘리던 내가 가여워졌고 더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식이 끊겼다.
그가 이메일에 남긴 전화번호를 눌렀다. 익숙한 목소리에 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태풍이 서울로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미룰 상황이 아니었다. 다음 날 저녁 비행기로 그는 떠난다고 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남편이 해외 지사 발령을 받았어. 길어야 4~5년일 줄 알았는데, 아이들 키우다 보니 이렇게 눌러앉고 말았네." 우리가 즐겨 가던 광화문 근처 파스타 집에서 뜨거운 스파게티를 먹으며 그는 졸렬했던 젊은 날의 자신을 사과한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네가 결혼식에 안 온 게 그저 너무 섭섭하더라. 시간이 지나고 나이 먹는 동안 가끔 돌이켜봤어. 그때 왜 나는 너한테 연락을 못 했을까, 왜 내 감정만 그리도 크게 여겨졌을까." 마찬가지다. 친구의 마음을 짐작하면서도 미안함만 흘러넘치던 나 자신이 너무 가련해서 소중한 인연을 속절없이 놓아버렸다.
그리고 이 밤, 종종 함께 가던 식당에 앉아서 그때 그 맛을 온전히 간직한 파스타를 먹을 수 있게 된 건 나보다 늘 현명한 친구 덕이었다. 비바람 부는 늦은 밤, 28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건너온 친구와 다시 헤어졌다. 혼자 걸어서 집으로 오며 생각했다.
매듭을 잘못 엮지 않으려, 나는 발버둥 치듯 살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잘못 꼬이거나 끊긴 매듭을 고쳐 매는 용기일 수 있겠구나. 여태 나는 그걸 모르고 살았구나. 눈물이 쏟아졌다. 때마침 흩뿌리는 비가 외려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