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9시 20분쯤 경남 거제 부근으로 상륙한 제6호 태풍 '카눈'은 자정 무렵까지 우리나라를 약 15시간에 걸쳐 남북으로 가로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종단에 장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태풍 속도가 느려서다. 상륙 당시에도 태풍 치고 느린 속도인 시속 30㎞를 기록한 카눈은 11일 새벽 북한으로 넘어갈 때는 성인이 가볍게 뛰는 수준의 속도인 시속 15㎞로 더욱 느려질 전망이다.
카눈의 느린 속도는 우리나라에 역대급 피해를 초래했던 태풍 '루사'에 비견된다. 2002년 8월 23일 발생한 제15호 태풍 루사는 8월 31일 오후 3시쯤 시속 30㎞로 남해안에 상륙했다가 다음 날 오후가 돼서야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상륙 이후 진행 속도가 시속 18㎞까지 떨어지면서 20시간 넘게 우리나라 내륙에 머물렀다.
태풍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 그에 비례해 피해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루사는 시간당 100.5㎜, 일 강수량 870.5㎜에 이르는 기록적 폭우를 동반했고, 이로 인해 246명의 사망·실종자가 나왔다. 재산 피해 역시 5조1,000억 원 이상으로 국내 자연재해 사상 최대였다.
카눈은 전무후무한 한반도 종단 태풍인 데다가 루사에 비견될 만큼 진행 속도가 느려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초래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다만 루사가 닥쳤던 20년 전에 비해 방재 인프라가 잘 구축된 만큼 태풍 이동속도만으로 피해를 예단할 수 없다는 예상도 많다.
카눈의 저속 이동은 우리나라 주변에 태풍을 견인하는 흐름인 '지향류'가 약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상륙 직후 대구 부근까지 북상 속도를 높이다가 이후 속도가 꺾이는 것도 지향류 영향으로 풀이된다. 박정민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태풍은 지향류를 따라 북상하게 되는데, 지금은 지향류가 강하지 않아 느린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며 "충청도를 지난 이후에는 지금보다 지향류가 더 약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오후 1시 발표 기준 카눈은 자정 무렵 서울 북쪽 약 40㎞ 부근에 도달하고 11일 새벽 휴전선을 넘어 정오엔 평양 서쪽 약 30㎞ 부근에 위치할 전망이다. 같은 날 오후 6시엔 신의주 남동쪽 약 80km 부근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할 전망이다. 한반도 전체로 따지면 27시간 이상 머무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