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한 아파트에 사는 직장인 황모(37)씨는 지난달 집주인에게 전셋값을 3,000만 원 올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전셋값이 내려가는 추세라 당연히 감액 계약을 기대했지만, 최근 주변 시세가 오른 걸 보고 집주인 요구를 마냥 거절할 수 없었다. 황씨는 결국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기로 하고 인상률을 법 상한인 5%에 맞추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중순부터 하락세를 보이던 아파트 전세 시세가 최근 서울·수도권 중심으로 다시 슬금슬금 오르고 있다. 이에 편승해 전세 호가를 올리는 집주인이 많아지자, 부담을 낮추려고 계약갱신청구권 카드를 활용하는 세입자도 다시 늘고 있다.
10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서울·수도권 아파트 전셋값(1~8월 첫째 주)은 평균 -11% 하락했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서울은 5월 중순, 경기는 6월 초부터 전세 시세가 상승으로 돌아섰고, 인천은 지난달 중순부터 하락을 멈추고 보합(변동률 0%)을 이어가고 있다. 전세 시세가 바닥을 찍고 차츰 회복 중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주요 아파트 전세 시세를 살펴보면 하락세가 가팔랐던 연초에 견줘 크게 올랐다. 서울 대표 대단지 아파트인 송파구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59㎡는 연초 평균 하한 가격이 6억4,500만 원 수준이었지만 지난달 7억3,000만 원까지 올랐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호가를 5,000만 원 높인 집주인은 있어도 호가를 낮추는 이는 없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보통 전셋값이 싸지면 이사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재계약 대신 인근 새 전셋집으로 눈을 돌린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4월만 해도 60%를 찍었던 수도권 신규 전세계약 비율이 7월엔 55%까지 낮아졌다. 전세 시세가 다시 오르자 살던 집을 재계약해 눌러앉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전세 시세가 오르는 배경은 복합적이다. 서울·수도권 아파트 전세 매물은 연초에 비해 평균 45% 줄었다. 전세대출 금리가 주춤해진 데다 대규모 입주장도 마무리 국면이다. 서울의 올해 입주물량은 3만4,000가구 수준인데, 상반기에 70%(2만5,000가구)가 입주했다. 전세사기 여파 등으로 빌라 전세 수요가 아파트로 넘어오고 있다.
다만 전세 시세가 3년 전(2020년 7월) 임대차 2법 통과 뒤 전고점을 돌파한 수준까지 뛸 것이라고 보는 의견은 아직 소수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최근 전세시장은 지역, 아파트 연식별로 차별화 분위기"라며 "서울 강남구, 경기 화성시처럼 하반기 입주 물량이 몰리는 곳은 기존 아파트 위주로 전셋값 하향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