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에서 7.2조 투자받고도 절반만 웃은 독일...왜?

입력
2023.08.0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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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부보조금 지원에 TSMC 투자 '확정'
'경기부진' 우려 계속..."유럽의 병자" 경고도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대만의 TSMC가 독일 작센주(州) 드레스덴에 신규 공장을 세우기로 8일(현지시간) 결정했다. 독일은 전략 자산인 반도체 공급망 안정을 확보했고 작센주를 유럽의 반도체 생산 기지로 키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독일은 마냥 웃지 못했다. 독일 경제 악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때문이다.


'유럽 생산기지' 입지 굳힌 독일... '추가 투자' 기대감도

독일 언론 디벨트, 디차이트 등에 따르면, TSMC는 자회사인 ESMC가 지분 70%를 보유하는 합작 투자 형태로 독일 공장을 운영한다. 독일 차량부품 기업 보쉬 등이 지분을 나눠 갖는다. TSMC가 유럽에 공장을 세우는 건 처음이다. 공장은 월 4만 장의 12인치 웨이퍼 생산 능력을 갖출 예정으로, 2027년 가동이 예상된다.

독일 정부는 반색했다. 유럽연합(EU)이 반도체 자립을 목표로 현재 10%인 시장점유율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가운데, 독일이 반도체 생산 허브가 될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도 최근 작센안할트주(州) 마그데부르크에 신규 공장 건설을 확정했다. TSMC가 차량용 반도체를 주력 양산할 예정이라 독일 경제 핵심 축인 자동차용 반도체 확보에도 유리하다.

독일 정부는 TSMC에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한다. TSMC 공장 투자금 100억 유로(약 14조4,567억 원) 중 독일이 50억 유로(약 7조2,283억 원)를 댈 것으로 알려졌다.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부총리는 8일 독일 풍케미디어그룹 인터뷰에서 "반도체, 제약, 수소 등 여러 분야에서 약 20개 회사가 독일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투자액은 800억 유로(약 115조5,216억 원)에 달한다"며 추가 투자도 기대했다.


제조업 타격에 암울한 지표... 더 어두운 전망에 '착잡'

독일 경제 전반에 드리운 위기감은 그대로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독일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에 전분기 대비 각각 -0.4%, -0.1% 역성장을 이어가다가 올해 2분기 0%를 기록하며 가까스로 제자리걸음만 했다.

독일 경제를 떠받치는 자동차, 엔지니어링 등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촉발한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부터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미국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달 발표한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에서 독일은 지난달 38.8을 기록해 경기 침체 가늠선(50)을 밑돌았다. 6개월 연속 하락한 것으로, 코로나 팬데믹 때인 2020년 5월 이후 최저치다. 세계적 고금리 기조로 투자가 위축되고 주요 무역국인 중국의 경제 반등 속도가 느린 것도 독일 경제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전망도 밝지 않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에서 독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3%에 그쳤다. 주요7개국(G7) 중 유일하게 역성장이 예측됐다. 인구 고령화, 숙련 노동자 부족, 디지털 기술 사용 지연, 과도한 관료주의 등의 장기적 요인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독일경제연구소(IW) 소장인 미카엘 휘터는 "독일이 다시 한번 '유럽의 병자'가 될 실질적인 위험이 있다"고 최근 독일 언론 빌드암존탁 인터뷰에서 경고했다.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저성장·고실업을 겪을 당시의 별명을 재소환한 것이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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