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대령이 국방부 장관을 겨냥해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고 채수근 해병대 상병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채 상병이 수색작업 도중 숨진 경위를 조사한 해병대 수사단장이 보직해임에 반발해 입장문을 내고 결백을 주장하자 국방부는 사건을 넘겨받아 사실상 재조사에 나섰다. 특히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처벌대상에서 제외하려 윗선이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까지 불거져 양측의 진실공방이 격해지는 모양새다.
채 상병 사건 조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해 ‘항명’ 혐의로 보직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은 9일 실명으로 입장문을 내고 “채 상병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며 “저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를 적극 수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사 결과, (임성근) 사단장 등 혐의자 8명의 업무상 과실을 확인했고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내용을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대면보고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장관 보고 이후 경찰에 사건 이첩 시까지 그 누구로부터도 장관의 이첩 대기명령을 직·간접적으로 들은 사실이 없다”며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개인 의견과 (신범철) 차관의 문자 내용만 전달받았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국방부가 전날 “해병대 사령관이 수사단장에게 정당하게 내린 (이첩 대기) 지시를 해병대 수사단장이 불응해 그에 따라 보직을 해임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상반되는 내용이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도 이날 "전 수사단장에게 이첩시기 연기에 대해 명시적으로 지시했다"며 "신 차관으로부터 문자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대령은 현재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형사입건된 상태다. 군형법상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 범죄다. 다만 항명죄 적용은 논란이 있다.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처벌한다”는 항명죄 구성요건에 비춰 ‘이첩 대기’ 지시 자체가 정당했는지에 대한 판단이 선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민관군합동위원회 산하 군사법제도 개선분과위원장을 지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부당한 명령이더라도 합법적이면 복종해야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합법성과 정당성 둘 모두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국방부는 경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이첩 양식을 잘 채워서 보내면 됐던 것”이라며 “장관이 고민을 하고 판단을 한다는 것은 군 사법개혁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조사 결과의 경찰 이첩을 둘러싼 논란은 임성근 사단장의 거취와 맞물리면서 증폭됐다. 이종섭 장관이 임 사단장을 명단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의혹 제기가 잇따르면서다. '임성근 구하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놓고 대통령실 핵심 인사와 이 장관, 임 사단장과의 관계가 부각됐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이 장관(당시 대령), 임 사단장(당시 소령)은 외교안보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는데, 현재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도 마찬가지로 외교안보수석실 소속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임태훈 군인권센터소장은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해병대 수사단장은 임 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고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해 국방부 장관도 결재했는데 돌연 취소가 됐다"면서 "안보실에 보고되면서부터 일이 꼬였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공방이 계속되는 사이 국방부는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에 대한 추가적 검토가 필요해 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해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련자들의 과실과 채 상병 사망 간에 직접적이고 상당한 인과관계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없어 범죄 혐의 인정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박 대령의 수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국방부가 뒤집기에 나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