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처리장치(GPU) 전문 기업에서 인공지능(AI) 컴퓨팅 전문 제조업체로 떠오른 엔비디아가 새 AI용 칩을 공개하고 내년부터 공급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제품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를 장착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 공급 업체로는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유력하다. 두 회사는 HBM을 차세대 성장 동력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엔비디아는 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진행 중인 컴퓨터 그래픽 콘퍼런스 '시그래프 2023'을 통해 업계 최초로 HBM3e를 장착한 새 그레이스호퍼(GH) 슈퍼칩과 이를 넣은 가속 컴퓨팅 플랫폼을 선보였다. 이 플랫폼은 내년 2분기 시장에 공급된다. 가속 컴퓨팅이란 데이터를 병렬 처리해 연산 속도를 올리는 방식으로 보통 첨단 GPU와 초고속 메모리 반도체의 결합으로 이뤄진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급증한 생성형 AI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데이터센터(IDC)는 가속 컴퓨팅 플랫폼을 필요로 한다"며 새 IDC 장비를 가리켜 "사용자들이 원하는 어떤 거대언어모델(LLM)을 넣어도 미친 듯이 처리해낼 것"이라고 자랑했다.
업계에선 새 AI 플랫폼이 5월 대만 박람회 '컴퓨텍스 2023'에서 공개한 것과 기본적으론 같지만 HBM3e를 적용하겠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본다. 엔비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HBM3e는 ①직전 세대인 HBM3 대비 50% 더 빠른 속도를 제공하며 ②초당 10테라바이트(TB)를 처리하고 ③최대 3.5배 더 큰 AI 모델을 실행할 수 있다.
엔비디아는 HBM3e의 공급 주체를 밝히지 않았지만 전 세계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지목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내년 중 HBM3e 모델을 공개하고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부터 엔비디아의 'H100'과 'H800' 등에 HBM3을 납품했으며 HBM3 양산을 앞둔 삼성전자도 엔비디아에 HBM 공급을 늘려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두 회사는 HBM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9일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HBM 시장에서 올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각각 46∼49%를 점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AI 열풍' 덕에 결국 두 회사 모두 수혜를 볼 것이 확실하다. 트렌드포스는 "현재 최신 제품인 HBM3이 전체 HBM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내년 중 60%까지 커지고 가격은 오랫동안 고공행진할 것"이라며 HBM의 총매출이 내년엔 89억 달러(약 11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AI용 칩을 개발 중인 업체도 여럿이다. 엔비디아가 AI용 컴퓨팅 시장의 80%를 차지해 앞서고 있지만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엔비디아와 경쟁해 온 AMD도 6월 'MI300'을 공개했다. 클라우드 제공업체인 구글과 아마존웹서비스(AWS) 등도 두 회사와 별도로 자체 AI 가속기 칩을 만들면서 차세대 HBM을 채택할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