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가석방을 결정한 데 이어, 광복절 특별사면 명단에 비리 정·재계 인사들을 다수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조직을 불법 동원해 대선에 개입했던 원 전 원장은 지난해 말 특사에서 잔여 형기(7년)의 절반을 감형받았고, 14일 가석방된다. 광복절 직전 발표될 특사 대상에선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에 연루된 공직자들은 제외됐지만, 주요 비리 경영인들이 포함될 것이라는 얘기도 많다. 권력층이 비리를 저질러 나라를 뒤흔들어도 금세 사면받는 양상이 반복된다면, 범법 없이 살아온 일반 국민은 황당하고 억울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정부는 ‘국민통합’ 명분으로 정치인, 공직자 등 1,373명에게 신년 특사를 단행했다. 서민 수형자는 거의 없고 여권 중심의 ‘적폐 세력’까지 풀어줘 비판을 받았다.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 반복돼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직 정확한 명단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 등 횡령이나 배임을 저지른 주요 경제인들의 사면·복권이 유력하다.
정부는 그동안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을 사회 기강과 정의 회복의 기치로 내세워 왔다. 그런데 국기문란범인 원 전 원장은 13년의 형량 중 절반 정도인 6년 8개월만 살고 석방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감형해주지 않았다면 원 전 원장은 통상적인 가석방 심사 대상(복역률 60% 이상)도 되지 못한다. 고령(72세) 등이 감안됐다고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납득이 어렵다. 더구나 윤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직접 수사하기도 했다.
재계의 건의를 수용한 경영인 사면·복권 역시 일리가 없지 않지만,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법무부는 9일 사면심사위원회을 열어 명단을 골랐고, 대상자는 대통령이 최종 결정하게 된다. 특사 명단을 보고, 국민이 또다시 실망하지 않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