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입고 병든 농장동물도 가능한 한 치료하고 돌봐야죠"

입력
2023.08.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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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함께하는 직업] <15·끝> 농장동물 수의사 하현제 고려동물병원장

편집자주

동물을 위해 일하는 직업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수의사, 사육사, 훈련사 등은 동물 관련 쉽게 떠올리는 직업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실제 영화감독, 출판사 대표, 웹툰 작가 등 다른 직업을 갖고 동물을 위해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동물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만나 동물 관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사람은 동물을 기르며 고기와 가죽, 털을 얻는다. 보다 저렴한 가격에 많은 양을 생산하기 위해 대부분의 이른바 '가축'은 밀집 사육되고 있다. 가축은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되면서 경제동물, 산업동물로 불린다. 사람이 이용하는 동물이지만 사육환경을 개선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로 동물복지 개념이 도입되며 농장동물이라는 용어도 생겼다.

농장동물의 치료비가 도축했을 때 비용보다 더 든다면 농장주 입장에서는 동물을 치료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방치하고, 고통 속에 둬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번 집중호우로 수해를 입었을 때도 농장동물 수의사의 역할은 컸다.

젖소를 전문으로 진료하는 하현제 고려동물병원장은 9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농장동물 수의사는 농장주를 위해 동물을 관리하면서도 동물의 고통을 예측하고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며 "안전한 식량자원 확보뿐 아니라 동물복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 수의사는 경기 안성시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스마트팜 형태의 젖소 농장인 송영신목장 2곳을 운영하는 농장주이기도 하다. 두 농장은 2017년 1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부로부터 동물복지인증을 받았다.

-젖소를 진료하는 수의사가 된 계기는.

"농촌에서 태어나 소 키우는 걸 보며 자랐다. 어릴 때부터 소를 진료하는 수의사를 봤고, 오히려 개와 고양이를 진료하는 수의사가 생소했다. 소를 진료하는 수의사가 되기 위해 수의대에 진학했다. 한우는 질병이 거의 없어 바로 도축되는 경우가 많지만 젖소는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라 수의사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 수의사는 달걀, 고기, 우유 등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축산업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에서는 한 수의사가 모든 농장동물을 다 진료하던데.

"소, 돼지, 닭 등 종별로 전문 수의사가 따로 있다. 해당 축종이 많은 지역에 전문 수의사도 몰려 있다. 예컨대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 수의사는 낙농가가 많은 경기와 충청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다."

-농장동물 수의사는 어떤 일을 하나.

"응급진료보다는 농가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관리하는 예방의학에 중점을 둔다. 소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산과 진료다. 개체가 번식에 적합한지, 임신이 됐는지, 발정이 왔는지 등을 살핀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수정란 이식 등을 통한 종 개량도 한다. 백신 접종, 전염병 방제 등 공수의사 업무와 거세와 발굽 자르기 등 건강 관리 업무도 있다. 응급진료도 하지만 사료의 질과 사육 환경이 개선되면서 전보다 줄었다."

-올해 집중호우로 수해를 입은 농장동물이 많은데.

"밀폐된 구조의 농장에서 대량 밀집사육을 하는 특성상 동물이 대피하기 쉽지 않다. 소는 줄을 풀어 준다면 헤엄을 잘 치는 편이라 그나마 물이 닿지 않는 곳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목숨을 건졌다 해도 수인성 전염병 등에 걸릴 가능성이 많다. 필요한 경우 외상치료와 약물치료를 하며 소독, 방역과 관련해 농가에 자문을 한다."

-소는 어떤 경우에 진료나 수술을 하나.

"난산과 기립불능인 경우다. 어미 소는 분만 후 영양소 부족으로, 송아지는 설사로 수의사를 찾는 경우가 많다. 장이 꼬이는 등 소화기 질병의 경우에는 수술을 한다. 소는 이동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수술할 수 있는 위치에 소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보정하는 게 중요하다. 이후 부분마취를 하고 손을 뱃속으로 넣어 수술을 하게 된다."

-소가 아플 때, 치료보다 도축하는 경우가 많나.

"농장주는 돈을 벌기 위해 소를 키우는 거라 소 값보다 치료비가 더 나오면 치료하지 않는다. 질병에 걸린 소의 회복 여부를 결정하는 게 수의사의 역할이다. 또 부상당한 소의 경우 긴급하게 도축할 수 있는 절박도살제도가 있는데, 이 역시 수의사가 판단한다. 식용으로 불가능하다면 안락사를 하게 된다. 드물지만 끝까지 치료해 달라, 살려 달라는 경우도 있다."

-농장을 직접 운영하는 이유는.

"지속가능한 축산 모델을 만들고 싶다. 가축분뇨 퇴비화를 통해 땅을 살리고, 소들의 고통을 예측하고 최소화함으로써 동물복지를 높이고, ICT기술을 이용해 노동력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스마트팜을 구현하고자 한다. 또 대부분의 농장동물 수의사는 1인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이 많다.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춰 보고 싶어서 17명의 수의사가 함께 근무하는 병원을 운영하게 됐다."


-동물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축분에 피트모스라는 천연유기물을 섞어 퇴비를 만들고 있는데 냄새가 나지 않고 파리가 생기지 않는다.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소들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2016년부터 소에게 '카우톡'이라는 위 내 바이오 센서를 먹여 위 속 환경을 모니터링한다. 발정 시기, 건강 징후 등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소마다 주치의가 있는 셈이다. 국내에는 전체 농장의 약 10%에 적용되고 있다. 착유를 위해서는 로봇 착유기를 도입해 소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있다. 궁극적으로 소가 고통스러워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작업들이며, 이는 결국 농장주의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다."

농장동물 수의사가 되려면

전국 10개 수의대에서 졸업 후 농장동물 수의사를 지원하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더욱이 농장동물 수의사는 대부분 1인 동물병원이라 일할 병원을 찾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점은 진료할 동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농장주가 필요로 할 때 언제든 농장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므로 체력과 성실함도 중요하다. 동물이 휴일을 따져가며 고통을 호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장동물의 경우 암, 당뇨, 신장병 등을 고치는 게 아니다. 질병 예방 및 예후 관리 측면이 크다. 생명 존중을 기본으로 하지만 경제성을 따지는 농장주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또 농장주와는 대부분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계를 맺게 되므로 소통 능력도 필수다.

농장동물 수의사 지원자가 적은 이유는 사람들이 농장동물을 접할 기회가 없는 영향이 있다. 이 때문에 농장동물 수의사 인턴십 제도 도입 등 수의사 양성을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농장동물이 존재하는 한 수의사는 꼭 필요한 만큼 정책적으로 농장동물 수의사를 키울 필요가 있다.

도움말: 하현제 고려동물병원장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