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플래시 메모리 서밋(FMS).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SK하이닉스와 일본 키옥시아, 삼성전자 부스가 나란히 서 있었다.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3강'으로 꼽히는 세 업체는 이번 행사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에 비슷한 규모의 부스를 꾸리고 더 많은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으려 경쟁하고 있었다.
매년 8월 열리는 FMS는 신제품과 기술, 최신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업계 최대 규모의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행사다. 전 세계 낸드플래시 관련 업체들이 사실상 총출동하는데 관심은 단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쏠린다. 이날도 두 업체 부스엔 한눈에 봐도 가장 많은 인파가 북적이고 있었다. 각국에서 모인 관람객들은 전시 담당 직원들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폈다. 현장에서 만난 FMS 홍보 담당자 미셸은 "여기 온 사람 누구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부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들이 (서밋의) 주인공"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날 개막한 FMS에 참가해 낸드플래시 기술력을 뽐냈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메모리 반도체의 하나로 국내 양대 반도체 기업이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다.
스마트폰·컴퓨터 등 낸드가 주로 쓰이는 전자기기 수요 둔화로 낸드 불황이 길어지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업계의 화두는 혁신보다는 '감산'이었다. 그러나 이런 침체된 분위기에도 두 업체는 올 행사에서 첨단 낸드 제품을 대거 내놓으며 혁신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불황 극복의 열쇠는 월등한 기술력뿐이란 판단에서다.
SK하이닉스는 이날 부스 가장 앞에 321단짜리 낸드 시제품을 전시했다. 지난해 행사에서 당시 최고층인 238단 낸드를 공개한 데 이어 1년 만에 300단이 넘는 제품을 들고나온 것이다. 반도체 업계에서 300단 이상 낸드를 개발하고 있음을 공식화한 건 SK하이닉스가 처음이다. 처음 공개된 321단 낸드에 관람객들도 큰 관심을 드러냈다. SK하이닉스 부스를 찾은 이들은 321단 낸드 제품 앞에 모여 "이게 그 제품이냐"고 호기심을 보였다.
낸드는 아파트 건설처럼 '얼마나 높이 쌓느냐'가 곧 제품 경쟁력이다. 단수가 높을수록 같은 면적으로 더 큰 용량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공개된 321단 1테라비트(Tb) 낸드는 238단 512기가비트(Gb)보다 생산성이 59% 높다고 한다.
SK하이닉스 측은 "2025년 상반기 321단 낸드 양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인공지능(AI) 개발 속도가 빨라지며 고성능·고용량 메모리 수요도 늘고 있는 만큼 300단 낸드 시대를 가장 먼저 열어 시장을 이끌겠다는 목표다.
낸드 시장에서 20년 넘게 정상을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도 이번 행사에서 차세대 메모리 기술을 대거 공개했다. 가장 이목을 끈 제품은 '8세대 V낸드'를 탑재한 대용량 저장 장치(SSD) 신제품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1월 양산하기 시작한 8세대 V낸드는 236단에 1Tb 용량으로, 7세대(176단) 대비 데이터 입출력 속도가 1.2배 빠르다.
한진만 삼성전자 DS부문 미주 총괄(부사장)은 이날 FMS 기조연설에 나서 "AI 시대엔 메모리 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는 AI 혁신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가능한 것의 경계를 넓혀갈 것"이라며 초격차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