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불용 예산을 피하려 미리 납품을 받고 품질 검사 결과도 허위로 작성한 방탄 장비가 장병에게 지급된 사실을 감사원이 적발했다. 방탄 장비는 장병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사안인데도 성능 미달의 불량 장비가 보급됐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단순히 책임자에 대한 징계 요구로 끝날 게 아니라 수사로 그 경위와 진상이 밝혀져야 할 일이다.
감사원 ‘방탄물품 획득사업 추진실태’ 점검 결과를 보면 육군본부는 2021년 12월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경량 방탄헬멧을 ‘선납품 후검사’로 추진하고, 방위사업청은 육군 의견대로 이를 승인, 44억 원의 구매계약이 맺어졌다고 한다. 규정상 선납품 후검사는 국가재난 등 불가항력적인 경우와 북핵 위협 등 긴급 안보 사안이 있을 때나 승인하도록 돼 있다. 의아한 대목은 선납품 후검사가 이루어지도록 품질 검사 결과마저 허위 작성을 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육군 군수사령부 담당 과장이 방탄헬멧 완제품 측정값이 빠진 걸 확인하고도 재시험 대신 시제품 측정값을 기재해 적합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당시 보급된 방탄헬멧의 충격 흡수력 측정을 위해 미국의 방탄성능 시험기관에 의뢰한 결과 요구 성능에 미달하는 제품들이 적잖이 발견됐다고 한다.
또 해군과 해병대 장병에게 지급된 방탄복도 해수 방수 기능이 미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상적으로 바닷물에 노출되는 해군과 해병대 장병의 방탄복은 오래 노출될수록 방탄 기능이 떨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해수 방수 기준도 없이 방탄복 구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뚫리는 방탄복’에 대한 국민의 공분이 적지 않았다. 장병 안전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국민적인 요구가 있다. 그간 크고 작은 군납 비리가 적발될 때마다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장병의 안전 및 건강과 관련한 군납 비리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