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수사한 사무장병원(의사면허 대여 병원) 사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혐의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검찰 송치 없이 종결된 것으로 파악됐다. 또 다른 수사기관인 지방자치단체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송치율이 90%대라 대조적이다. 송치 사건의 기소율과 유죄 판결 비율 또한 경찰이 낮아 경찰의 사무장병원 수사 역량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8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불법 개설 의료기관(사무장병원) 수사의뢰 현황에 따르면 건보공단이 2014년부터 올해 6월까지 경찰에 수사의뢰한 사무장병원(약국 포함) 사건은 1,224건으로 이 중 1,009건이 수사가 마무리됐다. 수사 완료 사건 가운데 488건(48.4%)은 검찰에 송치된 반면 521건(51.6%)은 불송치(내사종결, 무혐의)됐다. 반면 지자체 특사경은 건보공단 수사의뢰 사건의 90.9%를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이 특사경보다 사건을 더 면밀히 수사해 혐의가 입증된 것만 송치한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쉽지 않다. 송치 사건만 놓고 봐도 검찰 기소와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는 비율이 경찰이 낮아서다. 특사경 송치 사건 가운데 기소로 이어진 비율은 86%인 반면 경찰은 75%에 그쳤다. 또 특사경이 수사해 기소된 사건은 단 한 건도 무죄 판결을 받지 않았지만 경찰 수사 사건은 6%가 무죄였다.
경찰의 저조한 실적을 두고 업무량 과다와 전문성 부족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사무장병원 사건은 사안이 전문적이고 복잡한 경우가 많아 경찰 수사 우선순위에서 밀리다가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경기 지역 경찰서에선 사무장병원 사건을 4년 동안 수사하다가 2018년 내사종결하는 일도 있었다.
건보공단이 사무장병원 사건의 95.7%를 경찰에 수사의뢰하는 만큼 혐의점을 보다 꼼꼼히 살피려면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보공단에선 공단에 특사경이 도입되면 보건의료 분야 전문성이 담보돼 사무장병원 수사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단 내부에선 지자체 특사경은 수사 과정에서 공단 지원을 받기 때문에 나은 실적을 내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간 더불어민주당 서영석·정춘숙·김종민 의원 등이 건보공단에 특사경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사법경찰관직무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했지만, 여당과 의료계 등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20년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개정안이 논의됐을 땐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들이 의원실을 돌며 반대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21대 국회에서 여당 의원 중 처음으로 이종배 의원이 지난달 관련법을 발의하면서 건보공단 특사경 도입 논의에 힘이 실릴 거란 관측도 있다. 정춘숙 의원은 "건보 재정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전문성을 가진 건보공단에 특사경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며 "올해 정기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