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지난달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도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채수근 상병 사건과 관련해 해병대 수사단장 박모 대령을 최종 보직해임했다. 당시 조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면서 상부에 항명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건 '이첩'을 놓고 국방부가 이종섭 장관의 지시를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한 것으로 드러나 '윗선 개입' 의혹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해병대 사령부는 8일 장교 보직해임 심의위원회를 열고 "수사단장의 지시사항 불이행은 중대한 군 기강 문란"이라며 박 대령에 대한 보직해임 처분을 최종 의결했다. 박 대령은 경찰 이첩을 대기하라는 이 장관 지시에 불응하고 수사단 조사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는 이유로 지난 2일 직무정지 및 보직해임됐다. 통상 심의위는 보직해임에 앞서 열리지만 △직무와 관련된 부정행위로 구속 △중대한 직무유기 또는 부정행위 △중대한 군 기강 문란, 도덕적 결함 등의 경우 보직해임 이후 7일 안에 열 수 있다.
박 대령 측은 이날 심의위에서 "경찰 이첩을 지시한 장관의 '원명령'이 존재하므로 '수정명령'도 반드시 문서로 해야 한다"며 "이를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항명죄가 될 수 없다"는 취지로 소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대령은 불복할 경우 30일 안에 인사소청심사를 요청할 수 있다.
앞서 수사단은 채 상병이 지난달 19일 숨지자 사고 경위와 부대 관계자 과실 여부 등을 조사하고 30일 이 장관 결재를 거쳤다. 이어 31일 언론과 국회에 결과를 공개하려다 돌연 취소했다. 장관 결재 이후 국방부 법무관리실이 '(이첩) 자료에 혐의를 적시할 경우 향후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사실관계만 넣는 게 타당하다'는 법리 검토 결과를 보고했다는 이유에서다. 수사단은 당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소장) 등 8명에게 '위험을 알면서도 수색을 강행시켰다'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장관 결재까지 끝낸 사안을 갑자기 되돌린 경위가 석연치 않다. 무엇보다 '혐의'를 적시하지 않고 사건을 이첩하는 사례가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이첩 연기를 지시한 이 장관의 선택에 이른바 윗선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혐의를 빼고 이첩을 하라는 건 쉽게 말해 어떤 부분이 죄가 되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수사를 해 달라는 말과 같다"며 "일반적이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사건과 관련해) 윗선이 개입됐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이첩 보류 지시가 수사단의 독립성을 해치는 '수사 개입' 아니냐는 지적에도 "지휘관에게는 수사에 대한 지휘 권한이 있다"면서 "(혐의와 사실관계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지 법적 검토를 해 보라는 것이지 수사기록에 대해서 뭘 다시 넣어라 빼라"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했던 채 상병 사건 조사기록을 앞서 2일 회수했다. 국방부는 조사기록에 대해 법적 검토를 진행한 후 경찰에 다시 이첩할 계획이다. 문제가 됐던 군 관계자들의 혐의 관련 사항 등은 제외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