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립정부(연정) 구성 권한을 가진 태국 하원 제2당 푸어타이당이 보수 진영의 품차이타이당의 손을 잡으면서 총선 이후 3개월 이상 계속된 정국의 혼란이 수습 단계에 들어설 전망이다. 두 당은 ‘왕실 모독죄’를 개정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힘을 합쳤다. 총선 결과 제1당이 되고도 연정을 꾸리지 못한 전진당(MFP)은 야당으로 내몰렸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푸어타이당과 품차이타이당이 기자회견에서 연정 구성 합의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당인 푸어타이당과 품차이타이당은 5월 총선에서 각각 141석, 71석을 얻어 제2당, 제3당이 됐다. 푸어타이당은 제1당이자 피타 림짜른랏 대표가 이끄는 전진당과 연정을 꾸리려고 했으나 지난달 총리 인준 투표가 군부가 장악한 상원에 거듭 가로막히자 결별을 택했다.
왕실 모독죄·징병제 폐지 등 선명한 개혁 정책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전진당은 보수적인 의회의 문턱을 끝내 넘지 못했다. 특히 왕실 모독죄 폐지가 반발을 샀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왕가를 비판할 경우 헌법 112조에 규정에 따라 최장 15년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왕실 모독죄는 앞서 폐지 움직임이 시민사회에서 확산했다. 그러나 스스로를 전통적인 왕실주의 가치의 ‘수호자’로 여기는 상원 의원 대다수는 이를 거부했다.
품차이타이당의 아누틴 찬위라꾼 부총리 겸 보건장관 역시 이날 기자회견에서 “왕실 모독죄에 손대지 않고, 전진당을 배제하는 조건으로 푸어타이당의 연정 구성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푸어타이당은 그간 군부 진영과의 연대설로 비판을 받자, 군부의 ‘핵심 정당’이 아닌 품차이타이당을 대안으로 택한 것으로 보인다. 품차이타이당은 현 정권에 참여한 보수 정당이지만 이념적 색채가 옅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두 당만으로는 총리 선출에 필요한 상·하원 과반 의석(376석)은 물론 500석인 하원 과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다른 정당도 필요하다. 제4, 5당인 팔랑쁘라차랏당, 루엄타이쌍찻당은 모두 친군부 계열이라 군부의 반대편에 섰던 푸어타이당이 권력욕에 야합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연정과 총리 선출을 둘러싼 난맥상이 깊어지면서 태국 사회의 분열도 심화되고 있다. 이날도 태국 방콕의 푸어타이당사에서는 전진당 지지자 등의 항의 시위가 열렸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또 한 차례 부결된 피타 전진당 대표의 총리 임명 동의안이 다시 상정될 수 없다며 재출마를 막은 의회의 결정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가 가려질 계획이라 후폭풍도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