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불법 개설 의료기관(일명 '사무장병원') 3곳을 운영하던 일당을 적발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4년 가까이 지나도록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부당 지급된 요양급여를 회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무장병원 운영자들이 타낸 요양급여는 불법 적발 이전 1년 8개월 동안에만 9억 원이 넘고, 이후로도 수사 지연으로 길게는 1년간 급여를 더 탔다.
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건보공단은 비의료인 A씨와 B씨가 운영하는 사무장병원을 적발해 2019년 말 수사 의뢰했다. 비의료인이 의료인 명의를 빌려 병의원을 개설하는 행위는 현행 의료법상 불법이다.
두 사람은 2018년 3월 충남 천안시 동남구에서 의사를 소위 '바지 원장'으로 고용해 의원을 열었고, 두 달 뒤엔 다른 의사를 고용해 같은 자리에 의원을 재개설했다. 그해 6월과 9월에도 각각 천안 서북구와 대전 대덕구에 의원을 개설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 3개 의료기관에서 의사 4명을 내세워 1년 8개월 동안 요양급여비용 9억여 원을 타냈다.
하지만 사건은 여태 수사 단계에 머물고 있다. 건보공단이 의뢰한 사무장병원 사건 수사가 평균 11개월가량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수사 종결까지 가장 오래 걸린 사무장병원 사건도 1,256일(약 3년 5개월)이었는데 이번 사건 수사는 이미 1,300일을 넘어섰다.
수사가 늦어지는 사이 사무장병원 3곳 중 2곳은 행정조사가 마무리된 이후로도 1년 내외로 더 운영됐다. 대전 소재 의원은 2020년 8월, 천안 서북구 소재 의원은 2020년 12월에 문을 닫았다.
건보공단은 자체 수사권이 없어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가 나와야 요양급여 지급을 중단하고 환수 절차에 착수할 수 있다. 수사가 길어질수록 사무장병원이 불법 수령하는 요양급여가 늘어나는 구조다. 대전 및 천안 서북구 의원도 운영 기간 중 벌어들인 요양급여 수입을 감안할 때 경찰 수사 대상이 된 이후로도 요양급여 수억 원을 더 타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통상 사무장병원 사건은 경찰의 업무량 과다와 보건의료 분야 전문성 부족으로 수사가 장기화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담당 수사관 교체, 수사권 조정에 따른 업무 과부하, 전산상 문제 등이 겹치면서 수사가 더디게 진행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수사를 신속히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천안서북경찰서 관계자는 "수사 자료가 워낙 방대한 데다가, 수사권 조정 이후 일시적으로 사건이 전산에 표출이 안 돼 우선순위에 밀렸고 검찰에 사건을 보냈는데 되돌아오는 일도 겹쳤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