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는 1962년 네 윈 군부 쿠데타 이래 군부의 그늘에서 사실상 벗어난 적이 없다. 군부 국가권력에 국민투표 등 제도적 민주주의는 한낱 치장일 뿐이었고, 결과가 거슬리면 힘으로 짓밟기 일쑤였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분수령인 1988년 8월 8일의 ‘8888 항쟁’ 등 시민 저항과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등 압박에 밀려 2010년 시도된 민정 이양 등 제한적 민주화 역시 군부가 용인한 한도 내의 민주화였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힘이 개입했다. 독립영웅 아웅산의 딸이자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아웅산 수치 집권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군부는 2020년 총선도 부정선거라며 2021년 쿠데타로 재집권, ‘1년 뒤 총선’ 약속을 아직 지키지 않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헌법에 의해 의회 의석의 25%을 자동적으로 보장받는다. 여러 차례 개헌 시도 역시 군부에 의해 무산됐다. 해방 이후 군부는, 민정 기간에도, 내무부와 국방부 등 핵심 부처를 단 한 번도 내준 적이 없다.
미얀마 현실의 바탕에 민족주의, 절대 다수인 버마족 중심의 버마민족주의가 깔려 있다. 그들 대다수에 군부는 반영-반일 해방투쟁의 적통이다. 국경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청소를 방불케 하는 탄압을 묵인-동조-지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얽혀 있다. 국가종교라 할 만한 불교공동체 역시 민족주의의 주요 구심체다. 상당수 불교 지도자들은 로힝야 무슬림 견제-탄압을 국가 수호 행위로 찬양하며 친정부 시위까지 벌이곤 한다.
로힝야 학살-탄압은 미얀마 군부엔 가장 손쉬운 ‘포퓰리즘’적 선택이다. 노벨평화상까지 탄 아웅산 수치 집권기에도 로힝야 탄압이 지속된 배경도 그것이다. 수치에겐 물론 힘도 없었지만, 불의의 민족주의를 거스를 도덕적 용기도, 어쩌면 의지도 없었다. 그는 2017년 옥스퍼드 자유훈장을 박탈당하는 국제적 망신을 당했고, 권력마저 잃고 지금도 연금당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