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에 '정부 비상금' 6,300억 책정… 연 1.5조+α 쓴다

입력
2023.08.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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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일반예비비 6,300억 국정원 지급
안보비·타부처 특활비 포함 시 최소 1.5조
"깜깜이 예산" vs "공개 땐 안보 위협"

정부가 새만금 잼버리 현장 지원처럼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안이 터질 경우를 대비해 편성하는 예비비에서 국가정보원에 지급한 예산이 지난해 6,300억 원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공식 예산을 더하면 국정원이 한 해 동안 배정받은 나랏돈은 최소 1조5,000억 원이다. 국정원은 전력 노출을 이유로 예산 공개를 꺼리고 있으나, 사용처를 알 수 없어 '깜깜이 예산'이란 비판도 계속 제기된다.

예비비에 섞인 국정원 예산, 편성 1년 후 공개

6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2년도 결산안'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예비비, 목적예비비는 각각 1조8,002억 원, 3조7,000억 원이다. 일반예비비는 정부가 쓸 곳을 정해놓지 않고 급히 필요할 때 꺼내 사용하는 '비상금'과 같다. 목적예비비는 올해 수해처럼 재난·재해가 발생했을 때 활용할 수 있다. 정부가 4일 국무회의에서 잼버리 현장 지원 몫으로 의결한 69억 원도 예비비다.

정부는 지난해 2월 15일 일반예비비 가운데 국가안전보장활동비로 6,300억 원을 책정했다. 국정원 예산인 이 돈은 지급 시점엔 '2급 비밀'로 취급해 비공개된 후, 편성 1년 후인 결산안을 통해 총액만 알려진다. 국정원은 국가안전보장활동비 6,300억 원 중 5,760억 원을 지출하고 540억 원을 남겼다.

국가안전보장활동비는 급할 때 쓰는 일반예비비 목적과 달리 고정 편성되고 있기도 하다. 정부가 최근 일반예비비로 국정원에 지급한 국가안전보장활동비는 2018년 5,882억 원, 2020년 6,000억 원, 2021년 6,300억 원으로 증가세다. 기획재정부는 1963년 제정된 예산회계특례법을 근거로 정보기관 예산을 예비비에 포함하고, 분기별로 지급하고 있다.

국가안전보장활동비를 더하면 지난해 전체 국정원 예산은 1조4,612억 원이다. 정부 예산에 담긴 국정원 공식 예산(안보비) 8,312억 원을 합쳐서다. 안보비와 국가안전보장활동비를 합친 국정원 예산은 2018년 1조513억 원, 2020년 1조3,056억 원에 이어 지난해까지 계속 늘고 있다. 정부는 과거 특수활동비로 주던 국정원 공식 예산을 2018년부터 안보비로 따로 편성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기 국정원의 특활비 상납 사건이 계기였다.

국정원 예산 감시 어려워 "통제 강화 필요"

각 부처에 흩어진 정보 예산을 고려하면 국정원 예산은 1조5,000억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부, 외교부, 경찰청, 검찰 등 주요 기관이 특활비 내에 국정원이 관여하는 정보 예산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5개 부처가 배정받은 특활비 2,393억 원 가운데 상당수는 국정원 몫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국정원 예산은 안보비 외에도 일반예비비, 타 부처 특활비 등 여러 통로에 섞여 있어 견제하기 힘든 구조다. 특히 국가안전보장활동비는 예비비 특성상 국회 정보위원회의 사전 예산 심의를 거치는 안보비, 정보 예산과 달리 사후 결산 심사만 받아 '감시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의 하승수 공동대표는 "국정원 예산을 예비비로 편성하는 건 국회의 예산 심사를 빠져나갈 수 있어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국정원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예산 규모를 전체 공개하긴 어려우나 쌈짓돈처럼 쓰일 수 있어 국회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은 전체 예산, 결산 내역에 대해 정부와 국회 정보위의 엄격한 심의·통제를 받고 있다"며 "정보기관의 예산·조직·인원은 국가 안전 보장과 관련된 비공개 사항으로 국정원 예산 규모가 공개되거나 논란이 될 경우 안전 보장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 박경담 기자
세종=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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