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참기 어려운 일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가 '누명을 쓰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일로 이름을 더럽히는 억울한 평판을 듣고서 누가 쉽게 잠들 수 있으랴. 세상이 거친 탓에 안타깝게도 경쟁자에게 '누명을 씌우는' 일도 있는데, 이럴 때면 누구든 '누명을 벗을' 날만 하루하루 기다릴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명을 쓰다, 누명을 씌우다, 누명을 벗다'란 말은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러면 '벌쓰다, 벌을 쓰다'를 같은 맥락에서 알아보자. 벌은 잘못한 이에게 주는 고통으로,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는 것을 '벌쓰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나는 매운 음식을 먹을 때면 벌쓰는 기분이 든다'가 있다.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게 하는 것은 '벌씌우다'이다. '선생님은 지각한 아이들을 벌씌웠다', '벌 받지 않아도 될 사람을 벌씌우지 않도록 신중히 판단하라' 등과 같다.
'누명을 쓰다, 씌우다'와 표현 방식이 같지만, 그래도 '벌쓰다, 벌씌우다'가 낯설다는 이들이 많다. 흔히 '벌서다'를 더 많이 쓰기 때문일 것이다. 잘못을 하여 일정한 곳에서 벌을 받는 것은 '벌서다'이고, 그렇게 시키는 일은 '벌세우다'이다. '수박 서리를 하다 들킨 아이들이 원두막에서 한두 시간 벌섰다'와 같은 예가 있다.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는다는 '벌쓰다'와 일정한 곳에서 벌을 받는다는 '벌서다'는 둘 다 사전에 있는 말이다. 맥락에 맞게 쓰면 되니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용례를 찾아보면 문맥에 상관없이 '벌서다'가 압도적으로 많다. 주로 '벌서다'를 선택하는 까닭은 '서서 받는 벌'을 연상하는 데 있다고 본다. 나이 든 세대들은 어릴 때 학교에 지각하여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 서서 벌을 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손을 들고 벽 한쪽에 붙어 서 있게 하는 것은 부모님의 훈육 방식으로도 흔하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벌'을 묘사한 그림은 주로 이러한 장면이고, 그 연상 작용이 뇌리에 '벌서다'를 각인시킨다. 반면에 누명은 '뒤집어쓰는 상황'으로 연상되면서 그 말이 살아 있는 셈이다. 우리는 자주 노출되는 장면과 기억의 잔상에 따라 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곤 한다. '누명을 쓰다'는 맞고 '벌쓰다'는 틀려 보이는 것, 바로 그 한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