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중국이 남았다

입력
2023.08.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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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죽이 잘 맞은 적은 없었다. 미국을 껴안고 일본과도 손잡았다. 자유를 앞세운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 외교에 정점을 찍을 참이다. 취임 1년 만에 거둔 속도전의 성과다. 장소는 미국 대통령 전용 별장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3국만 모이는 첫 정상회의가 이번 주말 열린다. 오롯이 셋이 얼굴을 맞대고 의기투합하는 자리다.

윤 대통령이 추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의 퍼즐 반쪽을 맞췄다. 다음은 반대편을 공략할 때다. 전범국가 러시아는 당분간 겸상할 처지가 아니고 북한은 대화는커녕 도발에 여념이 없으니 남은 건 중국뿐이다. ‘베팅’ 운운하던 싱하이밍 대사의 막말을 지켜본 터라 탐탁지는 않다. 대국을 자처하면서도 매번 북한 편을 들며 어깃장 놓는 게 기막힐 따름이다.

껄끄러운 상대다. 환대받던 그간의 정상외교와는 다르다. 윤 대통령이 내공을 뽐낼 수도 있지만 밑천이 드러난다면 낭패다. 다행히 자유진영과 전례 없는 결속으로 중국을 움직일 지렛대가 단단해졌다.

과거 대통령들도 미국을 거쳤다. 중국과 일합을 겨루기에 앞서 전열을 갖췄다. 그럼에도 번번이 되치기를 당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4월 한국 정상 처음으로 캠프 데이비드를 찾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골프 카트에 태우고 손수 운전하며 더할 나위 없는 우의를 과시했다. 그리고는 한 달 뒤 중국으로 건너가 한중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높였다. 기세를 몰아 같은 해 12월에는 첫 한중일 정상회의도 열었다.

중국이 손에 잡히는가 싶었다. 하지만 곧 훼방꾼의 실체가 드러났다.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하고 연평도에 화염을 퍼부어도 중국은 애써 모른 체했다. 중국이 외면하자 북한에 책임을 물어야 할 유엔 안보리는 무용지물이었다.

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 가장 서먹한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렸다. 아베 신조 총리가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싸늘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중간에 끼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멋쩍게 웃었다. 미국이 끌다시피 해 한일 정상이 어렵사리 마주했다. 그렇게 한미일 협력의 불씨를 살렸다.

중국이 틈을 파고들었다. 넉 달 뒤 시진핑 주석이 한국을 찾았다. 경제사절단 250명이 함께 왔다. 올 4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때보다 두 배 많다. 선물 보따리에 시선이 쏠린 사이 시 주석은 박 대통령에게 사드 문제를 들이댔다. 이를 무시하고 2년 뒤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발표하자 한중관계는 뒤틀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미국을 방문했다. 반년 뒤 다시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찾았다. 돌파구를 기대했건만 ‘혼밥’ 논란이 모든 이슈를 덮었다. 이후 6년이 지났다. 중국이 한국 드라마를 생색내듯 방영하고 한국 게임을 찔끔찔끔 허용할 때마다 호들갑을 떨어야 할 만큼 양국관계는 여전히 냉랭하다. 중국은 코로나19 이후 60여 개국과 단체관광을 재개한 뒤에야 한국을 명단에 넣었다.

이제 윤 대통령 차례다. 시 주석이 9년 넘게 방한을 미적대는 동안 상황이 고약해졌다. 양국 국민이 서로를 이토록 미워한 적도 없다. 미국, 일본과의 공조만으로는 버거운 난제가 즐비하다. 지난해 11월 발리에서 한중 정상이 짬을 내 만났지만 겨우 안면을 텄을 뿐이다. 우리 편을 넘어선 윤 대통령의 외교 역량이 비로소 시험대에 올랐다.

김광수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