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 재판결과도 '비밀'… 가해자 '숨길 권리'만 챙기는 학폭·교권침해

입력
2023.08.04 10:00
'품행 교정' 초점 소년법, 가해자 보호 강조
"피해자 알 권리 침해…필수 정보 통지를"
소년재판 결과도 알리는 법 개정 움직임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간강사로 근무하던 A씨의 일상은 2021년 12월 멈췄다. 학생 4명이 A씨 사진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고 "이년 찢고 싶으면 개추(개념글 추천)"라는 모욕 글을 남겼다. 학생들은 A씨 실명을 공개하는 것도 모자라, A씨가 학생을 협박하는 것처럼 사칭하는 글도 썼다. 이렇게까지 선생님을 욕보이고자 했던 이유는? 자기들 원하는 대로 생활기록부를 고쳐주지 않았다고 그런 것이었다.

이렇게 교권은 바닥에 떨어졌지만, 학교는 A씨를 보호하지 못했다.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정식 교사가 아닌 '시간강사'란 이유로 거부됐다. A씨는 명예를 회복할 마지막 방법으로 가해 학생들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했다. 교권침해보험 대상도 아니라, 소송 비용 수백만 원은 직접 부담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1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A씨는 그 학생들이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다. 소년보호 재판은 비공개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가해 학생 1명은 학교 선도위원회에서 등교정지 10일 처분을 받자, 불복 소송을 내고 전학을 가버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또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A씨는 약물치료를 받으며 일을 쉬고 있다. A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저는 일상이 망가졌는데 가해 학생들이 어떤 책임을 졌는지라도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울먹였다.

가해자 보호하다 피해자 '알 권리' 침해

A씨 사례처럼, 교권 침해나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해 학생 보호가 우선시되느라 피해자의 알 권리는 침해받는 문제는 반복되는 중이다. 일반 형사사건은 피해자에게 사건 처분 결과와 공판 일시·장소 등을 통지하도록 하지만, 소년(19세 미만) 사건은 소년법(30조의 2)에 따라 '소년부 판사의 허가를 받았을 때'만 사건 기록과 증거물 등을 열람·등사할 수 있다. 심리, 처분, 결정문은 원칙적으로 비공개다. 보호처분 결과는 전과로 남지도, 범죄경력 자료에 기록되지도 않는다. 소년법은 처벌이 아닌 품행 교정과 재범 방지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사이 피해자 권리는 뒷전으로 밀린다. 피해자가 청소년이어도 재판 결과를 알기 힘들다. 성폭력처럼 죄질이 나쁜 범죄도 마찬가지다. 성폭력을 당한 B양은 2021년 민사소송을 위해 가해자 주소 등을 알려고 수원가정법원에 정보공개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사건 기록의 열람·등사 신청도 불허됐다. 이듬해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2심 모두 패소하고 현재 상고심을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을 맡은 법률사무소 원곡의 조영신 변호사는 "피해자는 가해자 처분을 알 권리가 있는데도, 민사소송 등 절차에 필수적인 정보를 얻으려고 피해자가 고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과거 자녀의 학폭 가해자를 형사고소한 경험이 있는 이해준 학교폭력연구소장도 "피해 가족 입장에선 가해 학생의 처벌 결과를 아는 게 상처 치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통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중한 법 개정 필요"

가해자 처분 결과를 숨겨주는 현행법이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법을 바꾸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소년보호 사건에서도 피해자에게 사건 심리 일시·장소, 처분 결과, 기소 여부가 통지되도록 하는 소년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다. "피해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고, 헌법상 보장된 피해자 진술권 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취지에서다.

다만 인격이 완성되지 않은 청소년의 정보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법무법인 신광의 정복연 변호사는 "피해자 권리 보장은 필수지만, 가정과 사회가 보호하지 못해 범죄로 내몰린 청소년도 일반 형사피의자 같은 취급을 하는 건 우려된다"고 밝혔다. 소년 사건 전문인 법무법인 대한중앙 조기현 변호사는 "우범소년은 범죄를 저지를 우려만 있어도 보호처분을 받는데, 이런 결과까지 통보하는 건 과하다"며 "(피해자의 알 권리만을 보장하는) 정교한 (정보 제공)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수현 기자